[문화비평] 일제 식민지 시대의 문화 말살
[문화비평] 일제 식민지 시대의 문화 말살
  • 김태균 광주아트가이드 편집위원(문화연구)
  • 승인 2019.03.31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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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시간’이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 모든 것에는 역사가 생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의 역사를 배우지는 않는다.

고대부터 사관이 기술해 놓은 역사를 그것도 아주 선택적으로 배운다. 사관이 기술한 역사는 대체적으로 승자의 역사다. 사관은 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왕은 곧 권력쟁탈의 승자와 다름없기에 사관의 역사 기술은 승자에 유리한 역사 기술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바른 역사 교육이란 이렇게 승자에게 유리한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균형 잡힌 세계관을 갖게 하는 것이다.

천연기념물 제368호 삽살개. ⓒ광주아트가이드 갈무리
천연기념물 제368호 삽살개. ⓒ광주아트가이드 갈무리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 삽살개는 가혹한 수난을 겪었다. 북방으로 진군하는 일본군들의 방한용 군수품 제작을 위해 긴 털을 가진 삽살개는 조선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1938년, 조선총독부는 한국의 진돗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의 ‘내선일체’를 앞세우면서 조선의 토종개를 보존한다는 명분이었다. 아키타견, 기주견, 훗카이도견 등 일본의 토종견들과 유사한 외모를 갖고 있던 진돗개는 이렇게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일본의 야욕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던 삽살개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 동안 멸종의 위기를 맞았지만, 다행히도 1960년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하성진 교수가 삽살개를 찾아 보살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이렇게 삽살개에게만 해도 핍박의 역사가 담겨있다. 삽살개를 그저 털 많은 토종개로 알고 지나치면 우리는 일본에 또 당할지 모른다.

1907년, 인천 주안에 천일염 시험장이 생겼다. 수천 년간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들어온 조선인들에게 바람과 햇볕을 이용해 만든 천일염은 생소한 것이었다.

천일염이 처음 만들어지자 사람들은 이를 ‘왜염’이라 불렀다. 천일염은 만들기 쉽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군사대국을 꿈꾸던 일본에게 소금은 꼭 필요한 자원이었다.

일본은 조선 전역에 천일염 생산소를 세워 조선의 소금을 수탈했다. 이렇게 생산된 조선의 소금은 일본의 화학공업과 무기산업의 원료로 사용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천일염을 전통 소금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 소금은 바닷물을 끓여 만든 ‘자염’이다. 이렇듯 일제식민지 시대의 조선 문화 말살은 여전히 그 위력이 막강하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대대로 친일본적인 행보를 일삼았다. 일본의 국회의원들과 만나 축구를 하며 일본 의원들에게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애정공세를 펼치거나 천왕의 생일파티에 참석한다.

한·일 간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보면 문제 삼을 것이 없으나 한·일간의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을 감안할 때 자유한국당의 행보는 적절하다고 보기 힘들다.

역사의식이 부족하니 원내대표라는 사람 또한 친일청산을 위해 만들어진 ‘반민특위’를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이라고 비하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일제 식민지 시대 일본의 교육 목표는 획일화였다. 조선인들 모두를 천편일률적으로 일본 천황의 신하로 만드는 것이 일본 교육의 사명이었다.

그래서 의식 있는 지식인들은 서당을 통해 제대로 된 교육의 맥을 이어가려 노력했다. 당시 서당에는 몇 가지 지침이 있었다. 첫째, 학비 일체는 훈장이 부담, 월사금은 애초에 없고 대신 한 달에 술 한 병을 지참할 것. 둘째, 공책 연필 등은 무료로 급여. 셋째, 등교하면 매일 밤 떡 한 개씩 배급.

1918년 일본은 서당 규칙을 반포하며 서당 탄압에 나섰다. 당시 서당은 황국신민화 정책에 대항해 민족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탄압으로 1만 6000여 개에 달하던 서당은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결국, 서당은 일제의 보통학교에 휩쓸려 종적을 감추었다.

일제식민지 시대를 두고 일본 참 나빴다고 푸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일본이 왜 나빴는지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역사를 알아야 한다. 제대로 따지고, 따져서 바로잡고, 바로잡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튼튼한 사회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 역사 공부가 필요하다.

역사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와 이 시대를 돌아보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의 무지를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역사가 걸어오는 말을 듣기에 세상은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정보의 홍수는 우리에게서 집중력을 앗아갔으며 동시에 더 많은 욕구불만을 조장한다.

포털사이트와 신문사 홈페이지를 가득 메운 광고는 욕구불만을 이용해 계속 소비하라 외친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문화 말살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고도 볼 수 있다.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13호(2019년 4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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