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71년 만에 첫 재심 열린다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71년 만에 첫 재심 열린다
  • 광주in
  • 승인 2019.03.2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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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서초구 대법원에서 '여순 사건 민간인 희생자 재심인용 재항고', '한의사 한약국 개설 약사법위반' 결정 전원합의체 선고가 열리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지난 1948년 여순사건 당시 희생자 인 고(故) 이 모씨등 3명의 재심 인용 결정에 대한 재항고 사건에서 재심 개시를 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9.3.21/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서미선 기자 = 1948년 전남 여수와 순천에서 일어난 여순(麗順)사건 당시 반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첫 재심 재판이 열리게 됐다.

여순사건 당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판결이 확정돼 사망한 피고인들에 대해 재심개시결정을 확정한 첫 사례로, 사건이 일어난지 71년만이다. 재심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진행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이 선고돼 사망한 장모씨 등 3명에 대한 재심청구사건에서 대법관 9대4 의견으로 재심개시를 결정한 원심에 위법이 없다고 판단해 검사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들 체포·감금이 일정한 심사나 조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고, 장씨 등 연행과정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도 이에 부합한다"며 재심사유를 인정한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검사의 재항고이유는 아니었으나, 이 사건 판결문이 발견되지 않아 재심의 대상이 되는 판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대의견에 대해선 "판례에 따르면 판결서가 판결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해당 재심대상판결이 선고되고 확정돼 집행된 사실은 판결내용과 피고인들 이름 등이 기재된 판결집행명령서와 당시 언론보도 내용으로 알 수 있다"며 "군법회의에 대한 위헌·위법 논란이 있으나 국가공권력에 의한 사법작용으로 군법회의를 통해 판결이 선고된 이상 판결 성립은 인정된다"고 부연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 주둔 14연대가 제주 4·3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뒤 토벌군의 진압 과정에서 1만여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장씨 등은 1948년 10월 반란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순천을 탈환한 국군에게 체포된 뒤 22일만에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곧바로 처형당했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여순사건을 직권조사해 군경이 순천지역 민간인 438명을 반군에 협조·가담했다는 혐의로 무리하게 연행해 살해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장씨 등의 유족은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 쟁점은 당시 군경이 장씨 등을 불법체포·감금한 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 있는지였다.

1,2심은 "판결문에 구체적 범죄사실 내용과 증거 요지가 기재되지 않았고, 장씨 등은 물론 다른 희생자들에 대한 영장의 존재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며 "법원이 발부한 사전·사후 구속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체포·감금됐다"고 판단해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2015년 7월 사건을 넘겨받고 지난해 12월 재심 결정 기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고, 이날 하급심 판단에 따라 재심개시를 최종 결정했다.

조희대·이동원 대법관은 "재심사유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재심대상 확정판결 자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고 설령 판결이 존재한대도 현재 그 공소사실을 알 수 없는 이상 재심이 가능하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다"는 취지로 반대의견을 냈으나 소수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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