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 10일째. 모든 게 새롭고 낯설고 어색하지?

며칠 전 네가 말했지. 대학생이 되고 보니 방만한 자유가 감당이 안 된다고, 너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불안하다고 했지.

심지어 네 친구들은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고등학교 때가 더 편했다고 했다지. 자유마저도 부담스럽다는 네 말은 그만큼 지금 너를 둘러싼 환경이 낯설고 적응하기 힘들다는 말이겠지.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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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뿐이겠니. 너에게는 아마도 더 어려운 선택의 순간들이 올 거야. 교과서로 배우던 정제된 지식을 이제는 날것으로 직면할 것이고 거친 그대로 소화시켜야할 테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편입을 미뤘던 리얼 세상이 너의 배움터가 되었으니 말이야.

28년 전, 딱 이맘때쯤 나도 너처럼 당황했단다. 갑자기 손에 쥐어진 자유와 선택을 감당할 수 없어 실수도 많았고 멀미가 날 지경이었어. 나는 소위 운동권에 속하는 부류였어.

그런데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면서도,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으면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고 자책했어.

거리에 있을 때는 강의실에 있는 친구들이 얌체 같았고, 강의실에 있을 때는 거리에 있는 동지들에게 미안했어. 왜 그랬을까. 그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자기 자리’에서 ‘제대로’ 살면 그것으로 되는 거였는데 말이야.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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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자기 자리’에서 ‘제대로’ 산다는 것이 어렵지.

3월 11일에 전두환이 광주에 재판을 받으러 왔단다. 이미 역사적 사실로 증명된 5.18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기 때문이야.

많은 시민들이 법원 앞에 모여 전두환은 사죄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전두환이 죄에 따른 처벌을 받기 바라며 인간띠 잇기를 했단다.

그날 갑자기 비가 내려서 무척 추웠단다. 양동시장의 어느 상인은 뉴스를 보고 달려와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유자차를 나눠주었어.

부모를 따라온 꼬맹이가 제 몸피보다 큰 우비를 입고 시민들과 나란히 서 있었고, 법원 옆에 있는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창문을 열어젖히고 전두환을 처벌하라고 소리를 치기도 했단다. 기특하게도 그 쪼그만 아이들이 말이야.

재판이 끝나고 전두환이 법원을 빠져나가려 하자 시민들이 겹겹이 차를 에워싸고 막았단다.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자를, 가족을 참살한 자를, 오히려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자를 용서할 수는 없는 거잖아.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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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두환은 비웃듯이 법원을 빠져나갔고 시민들은 눈앞에 원수를 두고도 어쩌지 못하는 무력감을 느꼈단다.

나는 뒤숭숭한 마음으로 대학원 청강수업에 들어갔어. 법원에서의 대치로 두 시간이나 지각했기 때문에 맨 뒷자리로 가서 앉았지. 교수님의 열강과 학생들의 열기로 강의실은 뜨거웠어.

나는 조금 전 법원 앞에서의 상황과 강의실 간의 간극이 너무 커서 좀 당황했어. 강의실에 앉아있지만 감정은 아직 법원 앞에 있을 때 그대로였거든.

울분으로 부르짖던 사람들과 강의실의 나직하고 열띤 분위기가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이었어. 그건 아마 대학시절 내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할 거야. 쟤들은 왜 행동하지 않고 강의실에서 책만 파고 있는 거지, 하던.

서로 다른 여기와 저기. 그런데 그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단다. 알면서도 아쉬웠던 거지. 오래 전 유행하던 우스갯소리가 있지.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그래, 모두가 거리로 나올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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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도 안 되고 말이야. 문학인을 문학인으로, 회사원은 회사원으로, 정치인은 정치인으로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지. 청년들도 청년으로 살아야하고 말이야.

너도 너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공부하고, 엔시티 콘서트에 가고, 인스타 하면서 말이야. 중요한 건, 네가 속해있는 세상과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의 삶이 단지 너라는 ‘점’ 하나가 아니라 여러 ‘점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 점들이 모인 거대한 국가와 사회라는 시스템이 너에게 영향을 미치니까.

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작동에 반하는 힘은 어떤 것들인지 알아야 비로소 너라는 ‘점’이 온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야.

요즘 청년들은 미래가 암담하다고 자평하지. 포기할 게 무수히 많아서 N포 세대라 하고, 사상 최악의 취업난과 실업률 운운하지. 우리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난관이고 절망이라고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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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다른 사람이라니. 맞아 그럴 수도 있어. 그래도 세상에서 눈 돌리지 않고, 직시하며 살았으면 좋겠어. 그곳에 있는 사람에 대한 공감,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이해하고 그 마음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스물, 아이에서 성인으로 가는 나이. 물이 가득 차서 찰랑거리는 유리잔처럼 불안하고 떨리겠지. 하지만 가장자리에 둥그렇게 만들어진 표면장력의 긴장이 있기 때문에,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이, 더없이 아름다운 나이야. 아슬아슬하고 때로는 나태한 너의 스물을 누리고 즐기렴.

다만,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채로이면 더 좋겠구나.

마흔여덟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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