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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탓할 일 아니다” 日 소송 패소 뒤 시민들 발 벗고 나서

한국사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근로정신대 문제 본격 제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의 30년 투쟁 보여줄 ‘역사관’ 건립 과제

일제강점기 여성 인권 문제 중 하나인 여자근로정신대 문제를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려온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평범한 시민들이 피해 할머니들 문제에 발 벗고 나선 것은 10년 전인 2009년 3월. 1999년 3월 1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본에서 제기한 소송이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한 뒤였다.

재판에서의 패소보다 더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피해 할머니들의 외로운 투쟁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피해 할머니들이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를 이끌던 이금주 회장과 함께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해 싸우는 동안, 이들을 손잡아 준 사람들은 정작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이었다.

‘일본만 탓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왔다’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으로 나섰지만 일본 재판마저 패소로 끝나 무엇 하나 희망은 없었다. 그러나 역으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오히려 시민들을 단단히 묶는 동력이 되었다.

공교롭게 그해 9월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이 문을 열면서, 다 끝날 것 같았던 근로정신대 투쟁의 새로운 도화선이 되었다. 일본정부가 뒤늦게 피해 할머니들에게 그동안의 화폐가치 변동을 고려하지 않은 채 64년 전 액면가 그대로 후생연금 99엔을 지급한 문제도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결국 그해 10월부터 다음해 7월까지 이어진 208회에 걸친 1인 시위 끝에,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은 2010년 11월 광주에서 스스로 문을 닫았고, 미쓰비시중공업은 해방 후 처음으로 근로정신대 문제와 관련한 문제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러나 정부의 무관심 속에 미쓰비시는 질질 시간만 끄는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고, 16차례 이어진 교섭은 2012년 7월 6일 성과 없이 결렬되고 말았다.

2012년 5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새롭게 인정한 대법원 파기 환송 사건을 계기로 잇따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차로 제기한 소송은 대법원 재판거래,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과의 싸움 끝에 2018년 11월 29일 마침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그동안 시민모임은 1인 시위, 수 십 차례의 홍보활동 및 거리 캠페인, 일본 원정 투쟁 등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잘 인식되지 않았던 여자근로정신대 문제를 본격 제기해 알려왔다. 이 결과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자근로정신대 문제는 이제 몇 줄이나마 역사교과서에도 등재되게 됐다.

양금덕 할머니.
양금덕 할머니.

특히, 2012년 3월 광주시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전라남도(2013) ▲서울시(2013) ▲경기도(2014) ▲인천시(2015) ▲전라북도(2016)에 이르기까지 6개 지방자치단체가 잇따라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하도록 이끌었다. 현재 이들 자치단체는 매월 30만원 생활보조금을 피해 할머니들에게 지원해 오고 있다.

적지 않은 발자취를 남겼지만 늘 활동비를 마련하는 문제는 짐이 되었다. 2010년 해방 후 처음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을 교섭 테이블로 불러냈지만 이 순간에도 가장 큰 고충은 일본을 오갈 교통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한 회원의 전세자금 800만원을 임시로 끌어 쓴데 이어, ‘10만 희망릴레이’라는 이름으로 국민 10만명을 목표로 1천원 모금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0년 활동 중 6년을 다른 단체 사무실 한 쪽에 얹혀사는 더부살이 생활을 해 왔다. 몇 년 전 작은 월세 사무실로 독립했지만, 소송을 비롯해 일본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하는 일은 여전히 버겁다.

시민모임은 지난해부터 일제 피해자들의 한과 눈물이 서린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회장 이금주) 각종 자료, 일본 소송자료, 근로정신대 활동 자료들을 내용별로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피해자들이 속절없이 쓰러져가는 상황에서, 일본정부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30여년 투쟁해 온 인권운동의 발자취를 담는 역사관을 건립해, 시민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역사교육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구상이다.

논의를 거듭한 채 몇 년째 미뤄지고 있는 시민모임의 무거운 숙제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는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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