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국민이 지키고 이끈 역사 Ⅱ
음악으로 국민이 지키고 이끈 역사 Ⅱ
  • 정수영 광주아트가이드 편집위원(문학박사)
  • 승인 2019.03.06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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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각자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는 재능을 한 가지 정도는 지니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 재능이 그냥 평범한 상황에서 쓰여 지는 것보다는 인생의 어느 한편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발휘를 하게 된다면 훗날 그에 대한 가치의 결과는 상상할 수 없는 열매의 흔적을 남기리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시절, 조선의 독립과 자유를 갈망했던 음악인들 또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음악적 지식과 재능으로 그들 뜨거운 가슴의 열정을 담아 시대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표출을 오선지에 그려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음악인들의 행동에 따른 그 결과물의 잔재가 100주년을 맞이하는 3·1절 지금까지도 역사의 앞면에, 때로는 뒷면을 그대로 장식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때로는 알면서도 외면한 채, 아니면 아예 모르는 채로 지내고 있는 안일함의 뒤끝은 아닐까? 우리들의 안일함의 그 뒷면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고 인식하여 제대로 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오리고 그려나가는데 있어서 지금도 아직은 늦지 않았을 듯싶다.

알고 지내자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올해의 3·1절은 100주년 기념이라는 특별한 의의를 지니고 그 어느 때보다 의식적인 움직임의 변화로 나아가고 있는 양상이 보인다.

오래전부터 TV나 인터넷을 통하여 ‘친일음악의 잔재’에 대한 보도가 되고 있었지만 미온했던 사회적인 움직임이 예전과는 다르다. 여기에 한 줄 보태기 위한 행동을 해볼까한다.

한국에서 음악인들에 의해 연주무대가 개최되는 것이 몇 번이나 될까? 셀 수도 없이 많은 연주무대들이 끊임없이 열리고 있는 실정이다.

다양한 출연단체들의 무대공연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들이 알면서도 외면한 채, 아니면 아예 모르는 채로 친일음악작품을 듣고 보는 상황은 얼마나 될까?

옛날보다는 현저히 적어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쉽사리 눈으로 목격하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친일음악의 잔재는 여전하다. 한국근대음악사를 대표하는 유명한 작곡가를 뽑으라고 하면 반드시 홍난파와 현제명이 들어간다.

이제는 이들이 시대와 타협하여 국민을 배신한 결과의 대가를 치루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도 몇 가지의 곡들, 고향의 봄, 고향생각, 가고파, 희망의 나라로 등과 같은 곡들은 전혀 의식을 받지 않고 여전히 연주되고 불리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노래 하나에 온 국민이 울고 가슴저며하며 그 멜로디에 하나가 되어 슬픔과 고통을 기쁨과 희망으로 승화시키며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함께했으니 어느 한순간 쓰레기통에 쳐 박아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윤극영의 ‘반달’, ‘따오기’ 보다, 홍난파의 ‘고향의 봄’, 현제명의 ‘고향생각’이 더 많이 연주되고 불리어 지고 있는 이 허무한 상황은 누구를 탓하겠는가.

여기에 더 황망하고 기가 막힌 것은 몇 해 전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던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마저 친일행적과 친나치행적이 사실화로 드러나면서 애국가의 존폐위기를 판단해야 하니 이 안타까움은 감히 금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재능과 행동이 비례하여 함께 가는 시대로 바뀌다

100년 전 이맘때, 나라의 존폐위기를 걱정하며 슬퍼했던 이들이 자신의 손을 가슴 위까지 올리는 행동, 만세 한 번을 제대로 외쳐보지 못한 채 이름 없이, 행적 없이 쓸쓸히 그렇게 홀로 가신 분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그 누가 행복하고 평온하게 사랑하며 사는 인생을 추구하고 싶지 않을까. 자신과 타인을 배신하지 않고 그 무엇보다도 국가를 배신하지 않으며 자유와 꿈과 희망, 사랑을 꿈꿨던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음악인들이 시대의 가장 아픈 고통의 상황을 그들만의 재능이라고 하는 음악으로 열정을 담아 오선지에 표출했던 행동의 기록과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키고 성취시키기 위해 시대의 상황에 굴복하고 타협하여 오선지를 그려나갔던 행동의 기록 뒤끝의 결과는 반드시 달라야 한다.

어떤 음악을 부르고 연주하고 계승시켜야 하며, 어떤 음악을 끊어내야 하는지. 이런 일환으로 광주에서는 그동안 미온하게 대처했던 친일음악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학교교가를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모르고 지내는 죄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하는 죄가 더 크다고 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것에는 정확히 인식하여 행동이 비례하는 역사 인생의 한 페이지에 동참함은 어떠할지.

만세를 부른다고 잡혀가고 죽임을 당한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와 국가가 있다는 것을 한번쯤은 기억하자.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12호(2019년 3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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