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A씨는 회전문이 돌아가는 정문 앞에서 사원증을 꺼내 목에 걸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출근이다.

그는 자기 사진 아래 새겨진 바코드를 기계에 갖다 댔다. 찍! 확인을 알리는 기계음이 명랑하게 울려 퍼졌다. 사무실엔 직속상관인 팀장이 먼저 출근해 있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내가 안녕하든 말든 자네가 무슨 상관인가?”

팀장의 퉁명스런 대답에 A씨는 몹시 무안해졌다. 맨 끝에 있는 자리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자꾸만 꼬였다. 다음날 아침, A씨는 어제의 실패를 거듭하지 않으려고 인사말을 바꾸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이런 아침이 대체 어딜 보아 좋단 말인가?”

팀장은 괜스레 트집을 잡았다. 신입사원이라고 무시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A씨는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수요일 아침에 그는 팀장과 마주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말았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생뚱맞은 인사말이 튀어나왔다.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본 것도 아닌데 새삼 반갑기는…?”

진로 진학 체험박람회 모습. ⓒ전남대학교 제공
진로 진학 체험박람회 모습. ⓒ광주인 자료사진.

팀장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뭔가 골이 난 사람모양 투덜거렸다. 그날 밤 A씨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도대체 아침마다 인사말 때문에 이 무슨 곤욕이냔 말이다.

이런 어이없는 대접을 받으며 회사를 계속 다녀야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얼마나 어렵사리 취직한 회산데, 1주일도 되지 않아 그만둔다는 말인가?

A씨는 식상하고 판에 박힌 말 대신 뭔가 창의적인 인사를 건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신입사원에 대한 팀장 나름의 시험일지도, 일종의 교육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멋진 문구를 찾아 인터넷에 떠도는 시들을 밤새 검색하느라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졸린 눈에 얻어걸린 김수영의 시 한 구절을 그는 머릿속에다 입력했다.

“밝은 날, 하아! 그림자가 없습니다.”

“뭔 헛소리야? 그걸 지금 인사라고 하는 건가?”

A씨는 몹시 낙담하여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줄 줄 알았다. 에이씨! 하마터면 투덜거림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금요일 아침에 A씨는 팀장을 향해 아무런 인사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냥 고개만 까딱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 했다. 이래도저래도 꼬투리를 잡힐 거라면 차라리 인사말을 던지지 않는 게 낫지 싶었다.

“자네 불만 있나? 고개만 까딱, 어디서 배운 인사법인가?”

참으로 미칠 일이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A씨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라고 중얼거렸다. 주말이 있다는 건 구원이었다. 적어도 이틀간은 시답잖은 인사말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다시 월요일이 되자 A씨의 마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졌다.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라도 된 양 무겁디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반갑습니다. 밝은 날, 하아! 그림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까딱!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A씨는 팀장과 마주치자마자 지난 한 주 동안 퇴짜 맞은 인사말들을 뭉뚱그려 쏟아냈다. 더는 인사말 따위로 머리를 짜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숨 가쁘게 뱉어내고선 곧바로 이어질 핀잔을 기다렸다. 더욱 노골적인 비난이 쏟아지리란 기대 아닌 기대를 하며….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세상 천지에 그리 긴 아침 인사는 처음일세.”

팀장의 대꾸는 지금까지와 결이 조금 달랐다. 말꼬리를 잡아 비난하거나 나무라는 말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A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 가 앉았다. 화요일 아침, A씨는 인사말을 전날보다 조금 줄였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반갑습니다.”

“인사하느라 시간 끌 필욘 없네.”

팀장은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그리 불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어느새 팀장의 말투에 길이 들었나 싶었다. 자신감이 생긴 A씨는 다음날엔 조금 더 짧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굳이 미국식 표현을 덧붙여야 하나?”

이진 소설가(광주여대 교수).
이진 소설가(광주여대 교수).

팀장의 지적은 여전했지만 그런대로 들어줄만 했다. 수요일 하루가 그닥 짜증스럽지 않게 흘러갔다. A씨는 어느 때보다 가벼운 기분으로 출근 2주 차의 목요일 아침을 맞았다. 언제나처럼 사무실엔 팀장이 제일 먼저 출근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자기도 모르게 첫날 지적받았던 것과 똑같은 인사말이 튀어나왔다. 놀란 A씨는 손으로 얼른 입을 가렸다.

“이제야 신입사원답군. 좋은 아침!”

팀장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세상에나! A씨는 입을 떡 벌리고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칭찬을 받은 것인지, 기분이 좋아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손바닥 소설 연재를 위한 변명>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월 평균 독서량이 0.8권이라고 한다. 읽기를 등한시 하는 세태에 긴 글은, 그리고 긴 글을 읽으라는 주문은 민폐다.

소설가로선 슬픈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웃들에게 읽기를 계속시키고픈 마음에 가끔이나마 짧은 손바닥소설을 연재하는 게 어떨까싶어졌다.

오늘 선보인 첫 소설은 직장인들의 답답한 일상에 대한 약간의 풍자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작성한 보고서를 빨간 펜으로 첨삭하는 상사와, 수정을 거듭하다 보면 최초 작성 보고서가 결국 결재서류가 된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부하 직원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핵심은 놓치고 중요하지 않은 주변만 건드리는 이런 상황을 아침인사라는 지극히 평범한 소재로 치환하여 다뤄보았다. 모쪼록 즐기셨기를!!


** 이진: 소설가, 문학박사(광주여대 교수). 주요저서로 <창>,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꽁지를 위한 방법서설> 등의 단편모음집과 최근에 펴낸 장편소설 <하늘꽃 한송이, 너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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