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다

‘제가 국무총리도 지냈고 대통령 권한대행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재임 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혐의로 탄핵당했고 지금 영어의 몸이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을 모시던 저로서는 정말 국민에게 뭐라고 죄송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에게 이 말을 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모두 알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한 사람은 없다. 국정농단과 탄핵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도 우물거린다. 할 말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할 말이 있다. 딴소리를 했다. 기가 막힌 말이다. 들어 보자.

황교안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고 국가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김병준·나경원의 말, 말, 말

말에는 세금이 안 붙는다. 과연 그럴까. 세금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이다. 신뢰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한국 정치인의 언어. 아니 초현실적인 상상력은 천재적 작가의 가능성을 과시한다.

나경원

“김정숙 여사의 숙명여고 동창으로, 당선 직후 첫 행보도 숙명여고 동창회에 함께 간 것으로 기억한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경위도 홍보전문가였는데 김 여사의 부탁으로 여당에 입당하고 도와주기로 하면서부터다”

김병준

“영부인의 친구라는 관점에서 위세를 얻고, 사익을 추구했다는 의혹이 드러나는 것이다”

김병준! 창피하지 않은가? 명색이 대학교수 출신이다. 전공이 무엇인가. ‘상상력과 초현실의 상관관계’인가. 정치가 아무리 개판에서 굴러도 넘지 말아야 할 경계가 있다.

그들이 한국 정치의 지도자라는 간판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보고 뭘 배우는가.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정치 이전에 사람부터 되어야 한다.

세상에 염치는 어디로 도망갔는가.

■황교안, 그는 누구인가

김병준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황교안 전 국무총리. ⓒ자유한국당 누리집 갈무리
김병준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황교안 전 국무총리. ⓒ자유한국당 누리집 갈무리

황교안은 누구인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요즘 매일같이 언론을 장식한다. 당연하다. 사람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한국당으로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만,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황교안 만한 인물도 찾기가 힘들 것이다. 사막에 오아시스인가. 모래밭에 진주인가.

황교안이 한국당에 입당했다. 정치가 치사하고 더럽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정치판을 휩쓴다. 새삼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다. 아무리 시궁창이라고 해도 이름은 있지 않은가.

국무총리에 대통령 권한 대행이다. 적어도 거기에 어울리는 처신은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염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 더 하면 사람 노릇 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교안의 한국당 입당 제 일성은 통합이다. 적폐청산은 ‘분열정책’으로 규정했다. 개가 웃는다면 심하다고 하겠지만 분열의 핵심이 누구인가. 황교안이 박근혜 정권의 핵심에 있을 때 한국 정치는 분열이 아니고 통합이었는가.

국정농단의 결과는 탄핵이었고 촛불혁명이었다. 황교안은 정직해야 한다. 통합을 말하는 황교안의 얼굴을 보았다. 얼마나 잘 생겼는가.

인간처럼 허물 많은 동물이 어디 있는가. 그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것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개·돼지도 거짓말은 못 한다. 그 허물을 딛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도적 인간의 도리다.

황교안은 얼마나 좋은 조건을 타고났는가. 좋은 학벌에다 관운도 뒤따랐다. 그렇게 복을 타고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다음은 자신이 알아서 할 탓이다.

사람마다 출세하고 싶은 욕망이 왜 없겠는가. 황교안 역시 같을 것이다. 그러나 출세도 상식의 범위에서 추구해야 한다. 적어도 황교안 정도의 복을 타고난 사람은 더욱더 그렇다.

염치를 알아야 한다. 순리를 따라야 한다. 어떤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그의 고교 친구 중에 故 노회찬 의원이 있다. 황교안을 볼 때마다 노회찬 의원이 생각난다.

■황교안과 김병준

황교안의 정치 재개를 시비할 생각은 없다. 제대로만 한다면 말이다. 몸에 때를 씻고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국민이 알기로 황교안은 대권의 꿈을 꾸는 정치지도자가 아닌가.

황교안이 입당을 하는 자리에 김병준이 있었다. 환한 얼굴로 황교안과 악수를 나누는 김병준과 겹쳐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눈을 감았다. 참담한 심정이다. 김병준이 어쩌다 저 자리에서 웃고 있는가. 그래도 좋다. 제대로 된 과거의 모습만 찾는다면 왜 정치를 못 하랴.

김병준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이념에 공감했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지방자치 관련 정책을 도왔고 노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충성을 다 했다.

김병준은 자신이 작성한 서류에 노무현 대통령이 수정한 친필 서류를 내게 보여주며 자랑을 했었다. 그의 충성은 추호도 의심할 것이 없다.

그러나 대통령 서거 후 그는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구축하는데 큰 노력을 했다. 탓할 일이 아니다.

단 한 가지 오늘의 그가 보여주는 행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이념은 어디로 갔는지 찾기가 어렵다. 과연 그와 황교안의 악수는 이 나라 정치를 위해 어떤 이바지를 할 것인가. 지켜봐야 한다.

설사 개천에서 용이라도 건진 것 같은 김병준의 모습은 진심인가. 환한 미소가 얼굴 가득한 황교안의 가슴 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 있을까. 오랜 세월 정치를 보아 온 사람으로 할 말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김병준은 노무현 정부에서 야당이 얼마나 정치를 망가트렸는지 잘 알 것이다. 잊었다고는 못할 것이다. 지금 비대위원장으로 보여 줄 것은 무엇인가.

지금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위한 청원이 20만 명을 넘어섰다. 어떤가. 황교안과 김병준, 나경원은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청원을 한국당의 이름으로 찬성을 할 수는 없는가.

못하겠다면 왜 못하는지 이유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 하나 더 있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원 추천이 제대로 됐는지 분명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

■신뢰 이상의 자산은 없다

양승태는 대법원장 출신이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누더기를 걸친 이 나라 고위공직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슬프다. ‘모른다’와 ‘기억에 없다’는 양승태에 구차한 변명.

마치 황교안이 박근혜 탄핵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을 못 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안타깝다. 공직자들의 일그러진 이런 모습이 후배 법관이나 공직자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안타깝다.

좋은 머리와 눈으로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청맹과니.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것이 제대로 된 정치인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어려울 것 없다. 염치와 분수를 알면 된다.

여야로 갈린 정치에서 정책 또한 다를 수가 있다. 그러나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반대당이니까 우선 반대부터 하고 본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황교안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머리 굴려서 신뢰를 얻을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황교안의 눈으로 보는 국민은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국민의 눈을 속이는 어떤 정치인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대한민국 정치인 모두에게 보내는 국민의 엄중한 경고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