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전두환 광주서 진압 지시" 책자 나와
5.18 당시 "전두환 광주서 진압 지시" 책자 나와
  • 조지연 기자
  • 승인 2019.01.0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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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록관, 1981년도 천금성 저서에서 전두환 '광주행적' 기록돼
나의갑 5.18기록관장, "당시 전씨와 소준열 등 대화 기록이 반증"

오는 7일 전두환씨의 광주재판을 앞두고 전씨가 광주에 직접 왔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기록물이 발견됐다.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4일 1980년 5월 당시 전두환(소장 육사11기) 국군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5ㆍ18 기간 중에 광주 현지에 내려와 소준열(소장, 육사10기) 전투병과교육사령관 겸 전남북계엄분소장과 정호용 특전사령관(소장, 육사11기) 등 셋이서 ‘광주사태’ 진압방식을 놓고 대화를 나눈 기록이 38년 만에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전두환의 광주 현지 방문’과 관련해 지난 1995~97년 검찰수사 및 법정에서의 계엄군 쪽 관련자들의 몇몇 진술이나 목격담 외에는 기록 등 물증을 찾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에서 진압 방식을 논의했다고 기록한 '10·26 12·12 광주사태' 후편 표지 그림.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제공)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에서 진압 방식을 논의했다고 기록한 '10·26 12·12 광주사태' 후편 표지 그림.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제공

5.18기록관이 이날 공개한 전씨의 광주행적을 반증하는 대화 내용은 전씨를 찬양하는 책자였던 <인간 전두환-황강에서 북악까지>(1981년 1월 발간)의 집필자인 소설가 천금성(2016년 작고)이 1988년 1월 펴낸 ‘10ㆍ26 12ㆍ12 광주사태’ 후편 220~221쪽에 나와 있다.

이 책 앞쪽 표지에는 ‘당시 관련자 연인원 200명 이상을 만나 정리한 실록 다큐멘터리-왜 이 기록은 그 후 8년 가까이나 발간이 유보되어야 했던가-이 기록이 후일 이 나라의 현대사를 평가하는 중요한 단서 가운데 중요한 단서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홍보문구를 기록해놓은 것.

이 책자의 대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육군 전투병과교육사령관으로 소준열 소장이 새로이 부임했다. 소 소장은 육군행정학교 교장으로 있었다. 소준열 사령관은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머리를 맞댔다.

“이대로 방치하다간 큰일 나겠소. 하루라도 빨리 평정을 시켜야겠소.”

하고 소준열 사령관이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정호용 사령관도 동의했다.

그러나 현지로 내려온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절대로 군사작전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계엄군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작전을 하면 대단한 희생이 따를 것입니다. 좀 더 참고 기다려 봅시다.”하고 말렸다.

5.18 당시 전두환씨의 광주 진입을 기록한 윗 책의 해당 관련 내용.
5.18 당시 전두환씨의 광주 진입을 기록한 윗 책의 해당 관련 내용.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제공

이같은 기록물 단서에 대해 나의갑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전두환 관련 단락 가운데 ‘현지로 내려온’이라는 대목의 ‘현지’는 그 당시 상황으로 미뤄보아 ‘광주’임이 틀림없다”며 “보안사령부가 서울에 있었으므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이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온’이라는 표현을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나 관장은 ‘전두환의 광주행적의 구체적인 시간대’에 대해 “황영시(중장) 육군참모차장이 소준열에게 전투병과교육사령관으로 내정된 사실을 통보하면서 광주사태가 수습되면 중장으로 진급시켜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5월20일 오후 6시경이었고, 5월21일 오후 4시30분경 소준열을 미리 전투병과교육사령부로 보낸 뒤 5월22일 오전 10시 전투병과교육사령관으로 취임하도록 했으니, 광주 현지에서 전두환ㆍ소준열ㆍ정호용 3인회동이 이뤄진 건 5월20일 밤에서 5월22일 사이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또 “‘5월21일’이 유력하다는 생각"이라며며 ”회동 장소는 전투병과교육사령부이거나 광주비행장 등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나 관장은 “이 책의 대체적인 논조는 자료의 대부분을 보안사령부에서 수집한데다, 전두환그룹(신군부) 쪽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술하고 있어, 전두환과 전두환그룹의 주장을 옹호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천금성이 첫 저서인 전두환의 전기를 쓰기 전에 전두환을 직접 만나 취재하지 않았을 리 없고, 전두환 보안사령관 시절 전속부관을 지낸데 이어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그를 수행했던 황진하(소령)가 전두환그룹의 핵심인사들(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 황관영 1사단장, 최평욱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운영위원 등)과의 면담을 주선하고 자료 또한 아낌없이 지원해준 것으로 천금성이 책에서 밝히고 있어, 적어도 ‘전두환의 광주 현지 방문’이란 사실은 신빙성이 있다”고 근거를 들었다.

이번 전두환씨 ‘광주행적’과 관련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면서 전씨 재판과정에 뜨거운 공방이 예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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