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그림(畵)은 한 몸이다
시(詩)와 그림(畵)은 한 몸이다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19.01.0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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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비움의 성찰' 목운(木雲) 오 견 규

눈이 왔다. 새벽녘부터 내린 눈은 해가 뜨자 진눈깨비로 우산 위로 내려앉았다. 분명 어딘지 알 것 같은데 더듬이의 작동이 원활하지 않았다. 통화음 너머로 일러주던 약국이 나오고 마트의 간판이 눈에 보일 무렵이 돼서야 방향감각을 되찾으며 안도했다.

소박했다. 더 이상 버릴 것도 더할 것도 없어보였다. 넓은 창 위로 직접 그려 붙인 창호에는 붉은 매화꽃이 벙그러지고 있었다. 여름의 강렬한 빛과 겨울의 차가운 웃풍을 막을 용도인 창호에서 봄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머물고 싶은 순간들

목운(木雲) 오 견 규 작가.
목운(木雲) 오 견 규 작가.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밝고 푸근하게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곤 했다. 빈자리가 더 많은 작업처럼 할 말을 다하고 있는 듯한 꼿꼿한 느낌을 받곤 했다.

목운 선생은 “붓을 처음 들고 그림을 그리려 할 때는 보이는 것을 그렸다. 그리고 싶은 것이 많았고 화지 안에 더 이상 그릴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해지면 붓을 놓았다. 그래도 늘 부족한 것만 같이 아쉬웠던 것을 기억한다.”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던 것들 속에서 내가 느꼈던 감성을 그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책을 통해 공부하고 배우면서 지금은 보이는 것들 속에서 느끼고 다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작업을 해간다.”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설명을 했다.

맞다. 스스로 깊어지는 성찰의 시간이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 한시도 놓치지 않은 채 따라하는 웅얼거림이 지나면 한 개의 단어를 명징하게 발음하게 되고 점점 자라면 눈으로 읽으며 입을 닫는 시간이 온다.

마침내 어른이 되었을 땐 사물을 눈으로 읽고 필요한 말을 할 그 때가 와야 비로소 입을 여는 순간을 알게 된다.

목운 선생의 화지를 들여다보다 알게 되었다. 비어있음은 더 완벽한 채움이라는 것. 한 겨울 눈 속에서 벙그러지고 핀 붉은 매화꽃이 그저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결과에서 비롯된 성찰의 빛깔이라는 것.

앞으로 나아가리라

바람이 움직인다. 물결을 이루고 한 방향으로 일렁인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목원의 작업 안에는 유독 많은 바람이 오고 간다. 아마도 바람은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바람이 오고가는 것과 시간이 흐르는 것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매화 심는 까닭은'- 오견규.
'매화 심는 까닭은'- 오견규.

 

목원은 “그림을 그리면서 한 시절 잘 살았으니 화폭 안은 점점 비어감이 맞고 일렁이는 시간이 바람으로 흐르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른이 넘은 늦깎이에 그림에 입문했다. 아산 조방원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시간의 찰나에서 삶을 성찰했다. 앞을 설계할 수 없는 지난한 길이었지만 스승의 뜻에 따라 그저 몸을 낮추고 향했다.

구도자의 길이었다. 목원은 “스승은 내게 그림의 완성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늘 말씀 하셨다. 사람이 되어가는 길이란 삶의 방향성과 성찰의 깊이에 관한 이야기였을 터인데 젊은 날의 난 그 큰 뜻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물론 현재에서 완성된 작업과 사람이 된 것도 아니지만 그저 멀리 보고 넓게 생각하고 깊이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된 것은 온전하게 스승의 가르침에서 연유한 까닭임은 말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흔들리면서 피는 꽃

늘 책을 가까이 둔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던 시간이 지나고 책을 찾고 가려 읽는 법도 알게 되었다. 시문의 풍경과 내 안의 풍경을 읽고 거르는 법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동안 주력해 온 수묵의 전통에 대해 현대적 해석의 방법도 찾았다. 목운은 “매일 살얼음 위를 걷는다. 수행하는 사람처럼 말을 아끼고 깊이 생각하며 그림과 자신을 동일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고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목운의 그림은 목운의 삶 그 자체로 보인다. 부지런히 마당을 쓸고, 까치밥 몇 알 남겨 둔 감나무 위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댓잎 바람 서걱이는 뒷마당을 거닐며 오늘 같은 어제와 오늘 같을 내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만이 할 수 있는 하루하루일 것이다.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10호(2019년 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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