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내가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는 서실과 어머니의 안방은 불과 몇 걸음만 디디면 보이는 거리다. 따로 작업실을 꾸밀 상황이 안되어 넓은 거실을 칸막이로 경계를 세우고 한쪽 부분을 작업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어머니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늘 혼자만의 운동을 했다. 1부터 100까지 숫자를 세워가며 무릎을 손바닥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내리치는 운동법이었는데 누군가에게 치매예방과 관절에 좋다는 말을 듣고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일부러 심심할까봐 TV도 안방에 설치해 드렸고 채널은 드라마에 고정시켜 드렸다. 그러다가 서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막내아들이 작업하는 곳으로 살며시 다가와 한지에 써 놓은 큰 글씨들을 보면서 "저 글씨는 어, 우, 나, 라.." 손가락을 가리키며 아는 글자를 발견하고 읽어가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캘리그래피 석산 작가 서실에서 작업하는 모습을지켜보는 어머니 강복덕 님 ⓒ석산 진성영
캘리그래피 석산 작가 서실에서 작업하는 모습을지켜보는 어머니 강복덕 님 ⓒ석산 진성영

어머니는 무학(無學)이다. 글자를 따로 깨우치지를 못한 채 지금까지 큰 불편 없이 살아 왔다. 그래도 7남매 이름과 전화번호는 직접 쓸 정도였다. 참! 신기하게도 배우지도 않았는데 농협에서 해마다 갔다 주는 농사달력의 빈 공간에 7남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써 놓고 가끔 전화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섬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다. 그날은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다고 해서 같은 동네에 사는 형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교회구경이나 가자고 해서 가본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내심(內心) “글도 모르는 데 뭐 하러 데리고 왔냐”고 내게 핀잔을 주었다. 마침내 부흥회 시작을 알리는 성도들이 무대에 나와 흥겨운 율동과 함께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연달아 2곡을 이어서 부르면서 어머니도 기분이 좋았던지 흥얼거리면서 손으로 장단을 맞추는 게 아닌가?

그때도 글은 몰랐지만 어머니는 평소 흥(興)이 가득했다. 흘러가는 유행가는 잘 몰랐지만, 고된 밭일을 하거나 술이라도 한 잔 걸치는 날이면 육자배기를 곧 잘 불렀다.

그날 밤, 어머니께 여쭤봤다. “어머니, 글 언제 배우셨어요?” “따로 배운 적이 없다”라고 하시면서 1주일에 한번씩 노인들 방문 하는 면사무소 복지과 직원에게 가끔 자식들에게 전화도 하고 싶다고 이름과 전화번호 숫자를 알려 달라고 했더니 틈나는 대로 글을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그제서야! 어머니가 글을 읽었던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후로도 어머니는 서실 소파에 앉아 큰 글자를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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