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모임 날이었다. 날짜를 정해놓고 만나지는 않지만,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나야 하는 친한 친구들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각자의 근황을 풀어놓으면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은영이가 휴대폰의 단축키를 누르더니 불쑥 친구들 앞으로 내밀었다.

은영이가 내민 휴대폰에는 ‘양림 동 엄마’라는 호칭과 함께 전화번호가 액정 모니터에 떠있었다.
“양림 동 엄마라니, 너희 엄마 언제 이사 가셨니?”
“뭐야, 갑자기 없던 엄마라도 생겼니?”

은영이의 친정이 산수 동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우리 시엄마가 양림 동에 사시잖니.”
시엄마라고 말하는 은영이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이 부드러워서 친구들이 놀란 얼굴로 은영이를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어머니에 대한 은영이의 껄끄러운 감정을 모두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엄마라고? 혹시, 너희 시어머니가 유산이라도 물려주셨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기어이 하고야 마는 진아가 한마디 하자, 은영이가 며칠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은영이가 친정 근처에 갔다가 두 분만 계실 부모님 생각이 나서 이것저것 사가지고 친정에 들렸는데, 집이 비어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친정어머니의 행동반경이 집 주변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은영이가 전화를 걸려는데, 하필이면 휴대폰의 전원이 끊겨있었다. 할 수없이 공중전화라도 찾아봐야겠다면서 돌아서는데, 때마침 목포에 사는 새언니가 왔다.

새언니에게 휴대폰을 빌린 은영이가 친정엄마의 전화번호를 눌렀더니, 액정 모니터에 ‘산수 동 엄마’라는 호칭과 함께 전화번호가 떴다. 새언니의 휴대폰에서 ‘산수 동 엄마’라는 호칭을 보는 순간, 은영이의 가슴이 한없이 따뜻해졌다. 외며느리가 되어서 부모님들도 안 모시나 싶어 은근히 못 마땅했던 새언니였는데, 갑자기 친언니처럼 가깝게 다가왔다.

은영이는 자신의 휴대폰에 입력되어있는 ‘씨어머니’라는 호칭을 떠올리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휴대폰에 시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입력할 때가 생각났던 것이다. 처음에는 ‘시어머니’라고 썼다가 ‘시어머니는 무슨, 씨어머니다.’라며 다시 ‘씨어머니’로 썼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간 은영이는 그 날로 자신의 휴대폰에 입력되어있던 ‘씨어머니’라는 호칭을 ‘양림동 엄마’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매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시어머니를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
“시어머니를 대하는 내 태도가 달라졌더니, 나를 대하는 시어머니의 태도도 달라졌다니까.”라고 말하는 은영이의 얼굴이 한없이 밝았다.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휴대폰의 호칭들을 일일이 확인하였다. 기분에 따라 아무렇게나 써놓은 호칭들을 따뜻하면서도 기분 좋은 호칭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나정이님은 광주 출신으로 광주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된 소설가입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및 한국 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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