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유태인

   
지금껏 엔터테이너(entertainer)로써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배우로 또는 감독으로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습니다. 헐리우드 내에서의 입지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했습니다.

『브레이브하트』(1995)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을 때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흥행에서 성공하고, 연출부문에서도 상을 받다보니 기분이 좀 업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 정점에서 겸손의 마음을 가졌어야 했습니다. 너무 갔습니다.

『패션오브크라이스트』(2004)를 세상에 내보이고 깨달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으로 당신들을 묘사했으니, 그 불편한 심기가 오죽했겠습니까? 하지만 제 오만은 도를 넘어서 작년 7월 28일 사건까지 일으켰습니다. 술에 만취하여 ‘세상의 모든 전쟁은 유태인들 때문’이라고 하다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이후 당신들이 보여주었던 모습들은 제가 두렵기에 충분했습니다. 낯선 세계 속에서 저는 나약한 한 인간일 뿐임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지금 내놓는 영화의 주인공 ‘표범발’이 자신의 숲에 만족하듯, 저도 제 세계 속에서 안주하며 살겠습니다. 이제 술도 끊었고,  ‘Apocalypto’(새로운 출발) 하겠습니다. 영화 속에 제 변화된 모습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아무쪼록 노여움을 푸시고, 과거의 원만했던 관계로 돌아가길 기원합니다.

                                                                   sincerely yours

                                                                           멜 깁슨

 

20여년간 헐리우드를 대표하며 배우와 감독을 오간 멜 깁슨은 최근 일련의 상황 속에서 유태인을 자신의 적으로 삼는 큰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헐리우드 스튜디오와 각종 미디어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고, 그의 입지는 위축을 넘어 파멸에 이를 지경이 되었다. 유태인 자본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헐리우드를 멜 깁슨은 몸으로 확인했다. 두려웠을 것이다.

   
『아포칼립토』는 이런 감정이 반영된 반성문에 가까워 보인다. 이제 현실 정치나 종교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과 동떨어져있음을 알리고 싶어서인지 엔터테이너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명백하게 선을 그으면서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남은 것은 헐리우드가 ‘흥행의 보증수표’로 자신을 다시 인식해 주기를 바랄 뿐….

‘세상의 모든 전쟁은 유태인 때문’이란 말이 무색한 시간과 공간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남아메리카의 잉카문명을 배경으로 한 전쟁은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만만한 꺼리였을 것이다.

등장인물들과 언어도 낯설다. 촬영지도 멕시코의 열대우림으로 옮겨 헐리우드와는 완전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낯설음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강조하는 한편, 혹시 발생할 지도 모를 구설수를 미리 방지하기 위한 의도가 읽혀진다.

영화는 ‘위대한 문명은 내부에서 스스로 멸망하기 전까지는 결코 정복당하지 않는다.’는 Will Durant의 무거운 말로 시작한다. 마지막은 16세기 유럽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아메리카 대륙해안에 정박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실제로 잉카제국은 에스파냐인들에게 멸망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결국 멜 깁슨은 잉카제국은 유럽인들에게 정복당해 마땅한 문명이었고, 붕괴의 원인 또한 제국 내부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십자가를 앞세우고 상륙하는 유럽인들의 정복의 정당성을 위해 잉카의 종교는 야만적이고, 미개하고, 잔혹하게 그려졌다. 눈치 볼 필요가 없는 곳은 철저하게 뭉개는 과감함이 압권이다.

   
주인공 '표범발(루디 영블러드 扮)'은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다. 초반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했고, 죽음이 가까스로 비켜가자 담담해진다. 추격자들을 피해 자신의 영역인 숲으로 돌아왔을 때는 자신감마저 가진다. 가족을 구출하고,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 새출발을 다짐하는 모습을 보며 멜 깁슨의 마음을 엿보는 것은 무리일까?

숨막히는 추격신에 주력하여 그가 가장 자신있고,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액션영역으로 다시 복귀한다고 세상에 선언하는 듯 하다. 헐리우드에서 아직도 잘 팔리는 상품임을 입증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이제는 자신의 영역에 만족하며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는 고백만이 남는다.

생존을 위한 멜 깁슨의 선택을 보며 앞으로 엔터테이너의 모습은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다만 헐리우드 내부와 시장의 검증과정이 남았을 뿐이다. 배우에서 출발하여 작가의 반열에 오른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로버트 레드포드와는 달리 멜 깁슨의 이름에는 작가라는 칭호를 영영 붙일 수 없을 것 같다. 혹 그가 다시 술을 마신다면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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