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와중에도 환한미소를 보이고 있다. ▲ 인터뷰중에도 한과 주문전화로 바쁜 안 대표.  
 

담양군 창평면 의향리에 안복자 한과집이 있다. 안복자 한과집은 암탉 품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봄도 빨리 오고 꽃도 빨리 피고 햇빛도 오래 머물다 가는 그런 곳이다.

안복자 한과라는 이름은 수없이 들었지만 그곳에 가서 안복자씨를 보기는 처음. 그녀의 첫인상은 우리농산물 꽃을 닮아있었다. 조용한 향기의 들깨꽃. 넉넉하고 편안한 박꽃. 겸손한 참깨꽃. 그리고 수수한 감자꽃 등등.

그녀는 바빴다. 고운 한복이 아닌 바지와 셔츠와 쑥색 앞치마를 두른 그녀는 한과 만들고 주문받고 공장까지 사러 온 손님 맞이하느라 차분히 대화 한마디 나눌 틈도 없었다. 그럼에도 시간을 뺏으러 그곳을 찾아간 우리 일행을 얼굴 하나 가득 웃음을 담고 반겨주었다.

그녀가 건네준 쌀 유과는 입에 넣자마자 혀에서 부드럽게 사르르 녹는 맛이 더 먹고 싶은 여운을 남게 했다. 어린 시절 설날 때마다 우리 논에서 난 쌀로 어머니가 만들어준 그 맛이었던가. 그랬던 것 같다.

   
  ▲ 안복자 대표가 덕으로 빚은 한과제품.  
설상에 차려놓고 귀한 손님 올 때마다 내놓기 위해 여기저기에 꼭꼭 숨겨두었던, 입에 찰싹 달라붙어 쫄깃거리며 달짝지근하니 서서히 녹던 그 참맛이었다.

안복자 한과의 설립은 그리 길지가 않다. 그녀가 한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1년. 고작 7년이다. 기간이 짧은데도 한과의 정상에 우뚝 선 것은 그녀의 정직과 성실과 한결 같은 마음 때문이다. 그녀는 한과 재료로 수입농산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논과 밭에서 난 순수 우리 쌀과 참께와 들께와 호박과 콩과 밀가루만 고집한다. 우리 논에서 난 우리 농산물 사용하는 것을 그녀는 절대적으로 고집한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한과계통에서 일인자가 되었다.

그녀는 한국전통음식 품질인증 획득과 한국전통식품 베스트파이브 선발대회의 각종수상부터 시작하여 작년에 신지식농업인장을 수여받았다. 신지식농업인장을 수여 받은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단 두 사람. 그중에 한 사람이 안복자씨다. 그녀의 한과는 해외에서도 찾고 있다.

미국과 독일과 호주는 이미 주문 판매되고 있고 그리고 중국까지도 그녀의 한과와 거래를 원하고 있다. 작년 월드컵 때 전남에서 독일로 그녀가 만든 한과가 들어갔다. 뉴욕의 바이어들이 곧 방문하겠다는 연락도 받아놓은 상태다.

그녀는 한과로 명성을 우리나라와 해외에서 얻었다. 명성을 얻으면 사람이 변한다던가. 초심을 잃고 오만해지고 거만해진다. 그리고 더불어 맛도 변하고 모양도 변하고 양도 변한다. 그러나 그녀의 한과는 변함이 없다. 명성과 부를 어느정도 이뤘어도 그녀의 한과 맛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그녀의 얼굴에 있는 웃음이나 말투도 한결같다. 바쁘다해서 유명해졌다해서 그녀의 웃음과 말투가 변한 것이 아니다. 그녀와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한과 주문전화가 수십 건씩 걸려오고 사람들이 몰려와도 "네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살가운 인사말로 상대를 편하고 즐겁게 했다.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우리 농산물 손맛 한과와 깊이 어우러진 덕스럽고 포근한 마음과 웃음이 그녀를 정상에 서게 했던 것이 말이다. 한복자 한과는 입소문 한과다. 기계로 찍어낸 것이 아닌 직접 손으로 빗고 거르고 튀긴다.

거기다 그녀의 덕과 정직과 성실과 한결같은 미소와 초심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렇게 전해진 안복자 한과는 명절땐 말 그대로 없어서 못 팔 정도다.

그녀의 한과를 큰아들 부부가 배우고 있는 중이다. 큰아들 채명(29)씨와 큰며느리인 장민옥(29)씨는 어머니인 그녀 밑에서 직접 한과를 빗고 튀긴다. 그녀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한과를 만드는 요소인 정직과 성실과 초심과 함께 자신의 미소와 덕까지도 물려줄 생각이라고 했다.

성실과 정직과 그녀의 덕으로 빗어진 안복자 한과. 상표에 우리꽃을 닮은 그녀의 얼굴이 찍힌 안복자 한과는 설을 맞아 지금, 곳곳으로 배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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