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이르쿠츠크 기차역의 야경 ②울란바토르 기차역 |
차창 밖으로 러시아의 판잣집들이 드문드문하다. 아직 국경에 도착하지 않은 게다. 멀리 백설을 머리에 인 민둥산의 연봉들이 일행이 탄 기차를 구경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울란우데 역을 출발하여 몽골로 돌아가는 중이다.
지난 달 26일 울란바토르 역을 떠난지 8일만이다. 국제전화도 인터넷도 포기해야 하는 고립된 공간에서의 8일간. 걱정하고 있을 가족과 원고를 기다리는 분들에게 설명해도 믿지 않을 테지만 사실이다.
▲①열차복도 ②열차객실 |
러시아에 예속된 부리야트를 만나기란 매우 고도한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었다. 국경도시인 나호시크에서 무려 일곱 시간의 검문을 거쳐야 했고, 현지에서는 틈만 나면 웃돈을 요구하는 렌트차량 운전사들의 횡포를 견뎌야 했다. 검은 눈동자의 아시아인을 멸시하는 덩치 큰 러시아의 벽이 두텁게 느껴진다.
설움의 세월을 감당해 왔을 부리야트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두 세기 전 이 땅에 드리워진 짜르의 약탈과 코사크 용병들의 만행을 읽은 필자로서는 그 파편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일행의 기차행은 벌써 세 번째다. 맨 처음 울란바토르에서 이르쿠츠크행 기차를 탔고, 두 번째는 이르쿠츠크 역에서 울란우데행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번에는 울란우데 역에서 울란바토르행 열차를 탄 것이다.
여행은 늘 각별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뜻밖의 사람과 뜻밖의 사건. 흡연실에서 한국의 인사말을 묻던 몽골 청년들, 화장실 밖에서 고래고래 악을 써대던 러시아 여자, 노린내가 펄펄 나는 미국인(?), 옆집 아주머니 같은 청소원, 열차에서 합류한 러시아 통역자 아이우르(37)씨와의 대낮 보드카 상견례 등. 그 중에서 가장 기억되는 사람은 몽골의 보따리 장수들이다.
울란바토르 역에는 한 꾸러미의 짐을 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가는 보따리 장수들이다. 대부분 옷가지와 생활용품들을 취급한다. 러시아측 입장에서 보면 밀반입인 셈이니 국경 통관원들과의 숨바꼭질은 익숙한 풍경이리라.
그들의 물건은 열차의 침대와 천장 등 곳곳에 숨겨진다. 뇌물을 좋아하는 자들은 심하게 검색하고 마음씨 좋은 관리들은 눈대중으로 그들의 생계를 묵인한다. 이 날도 몇 명이 적발당하여 통관원들의 회식비로 8만 투그릭(몽골의 화폐단위로 원화와 환율이 거의 같음)을 상납했다고 한다.
우리와 같은 칸에 앉은 보따리 장수 어요(42)씨는 15살 아들과 10살 딸아이를 둔 여성이다. 벌써 5년째 북경과 모스크바를 전전해 온 베테랑급이다. 그녀가 한 번 왕래로 버는 돈은 40만~50만 투그릭 정도다.
그러나 워낙 긴 열차생활로 몸이 축나는지라 한 달에 두차례는 무리라고 한다. 햇볕을 못 봐서인지 얼굴은 핼쓱한데 한 끼 식사는 빵과 수테차, 싸구려 소세지가 전부다. 이래저래 건강이 악화될 수 밖에 없겠다.
과거 이 길의 일부는 ‘담비의 길’이라 불렸다. 러시아와 유럽의 사치스런 귀족들에게 담비의 털은 최고의 상품으로 호평받았기에 시베리아의 담비들은 씨가 마를 정도로 이 길을 통해 실려나갔다 한다. 더 오랜 시대에는 초원 실크로드를 형성하여 동서 간의 무역로로 활용되었다.
우리 역사의 일부인 발해의 무역로도 바로 이 길인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시대에는 담비가 아닌 중국제 옷가지와 생활용품을 짊어진 보따리 장수들의 길로 바뀌었다. 곳곳에서 러시아 관리들의 눈초리를 피해 고단한 생계활동이 되풀이되고 있는 이 길은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새로운 희망과 절망이 부침하는 곳이다.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