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올해 들어 중동 국가 곳곳에서 갈등과 무력충돌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사실상 내전으로 빠져들면서 이 지역의 긴장이 팽배해지고 있다.

점점 수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벌어지고 있는 중동 지역의 내전은 팔레스타인의 양대 세력인 하마스와 파타당의 유혈충돌, 레바논의 헤즈볼라 지지세력과 현 집권세력과 갈등, 끝이 보이지 않는 이라크의 폭력사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동시에 진행되는 이들 내전은 표면적으로 보면 양대 갈등 세력의 물리적 충돌과 보복성 폭력이라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금씩 차이점을 보인다.

◇ 팔', 對이스라엘 노선 놓고 자중지란 =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출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양대 세력인 하마스와 파타당의 갈등은 파타당 당수인 마흐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이 지난해 12월 16일 하마스 내각을 밀어내기 위한 조기 선거 계획을 발표하면서 양측 지지세력이 가자지구에서 충돌했다.

조기선거 계획 발표 뒤 지금까지 양측의 공방으로 지금까지 사망자수는 80여명에 이른다. 하마스와 파타당의 지도자는 수차례 제3국의 중재하에 통합정부 구성을 위해 회동을 가졌지만 `대화를 계속 하겠다'는 원칙론만 반복했을 뿐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있다.

인명피해를 내는 물리적 충돌만은 막아보자며 양측 지도부는 몇 차례 휴전에도 합의했지만 거리에선 양측 세력의 유혈충돌이 멈추지 않아 번번이 휴전 협의가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팔레스타인을 이끄는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을 `공공의 적'으로 보면서도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실체를 인정할 지 여부를 놓고 끝을 알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어느 한쪽이 자신의 정치, 외교 노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양측의 갈등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입장차가 팔레스타인 내전의 근본원인이긴 하지만 최근 하마스와 파타당이 보이는 내전양상은 양 세력의 권력다툼으로 볼 수 있다.

하마스는 작년 초 총선에서 자치정부 권력을 독점해 온 파타당을 이기고 승리한 뒤 자치 의회와 내각을 모두 장악했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압바스 수반은 조기 총선 카드를 꺼냈고 하마스는 이런 압바스 수반의 정치적 술수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펴면서 내전으로 빠져들었다.

◇ 이스라엘 전쟁 후유증 시달리는 레바논 = 1975년부터 15년간 극심한 내전을 겪었던 레바논도 최근 내전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현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 지지세력과 헤즈볼라를 주축으로 한 반대세력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

반정부 세력은 지난달 23일 전국적 총파업 투쟁에 돌입, 레바논을 사실상 무정부 상태의 위기에 내몰았고 군과 경찰에 진압에 나서고 학생들까지 친정부와 반정부 세력으로 나뉘어 유혈충돌을 빚었다. 이런 충돌은 지난해 7월 1개월여 간 계속된 이스라엘과 전쟁 뒤 불씨가 잉태됐다.

이 전쟁 이후 레바논은 서방이 지지하는 시니오라 현 정부 세력과 이스라엘과 전쟁을 사실상 승리로 이끈 헤즈볼라 추종세력으로 양분됐다. 시니오라 총리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활동하는 헤즈볼라의 무장조직의 이스라엘 군 납치로 불거졌다고 보고 유엔의 힘을 빌려 헤즈볼라의 무장을 해제시키려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위협이 존재하는 한 무기를 내려놓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헤즈볼라는 그런 계획을 갖고 있는 현 집권세력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우호 세력과 함께 거부권(3분의 1+1)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의 각료 지분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시니오라 총리는 이를 묵살했고, 헤즈볼라와 그 지지세력은 지난해 12월1일 현 정부 타도를 위한 시위농성을 시작했다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노동계와 손잡고 전국적 총파업 투쟁을 진행한 것이다.

◇ 시작과 끝 모르는 이라크 내전 = 미국 내 16개 정보기관의 공동 평가 보고서인 국가정보평가(NIE)는 2일 "종파간 정체성 강화, 폭력사태 성격의 현저한 변화, 종파 간 인구 이동 양상 등에 비춰볼 때 `내전' 이라는 단어가 현 이라크 갈등의 중요 요소를 정확하게 표현한다"고 적시했다.

이 보고서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라크가 내전상태라는 것은 누구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이를 종파 간 분쟁에 따른 보복성 폭력으로 보고 있지만 이라크전 개전 4년이 임박하고 있고 미국의 강경한 진압작전에도 민간인을 겨냥한 폭탄테러는 더 기승을 부리고 있고 미군 사상자가 이미 3천명을 넘어서는 등 이라크는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중동지역의 내전양상과는 달리 이라크는 종파간, 종파 내부, 권력투쟁, 돈을 노린 납치ㆍ살해 등 여러 원인이 뒤섞여 `백약이 무효'인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라크의 폭력사태를 종파간 분쟁으로 단순화한 미국의 해법이 `오답'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 중동내전과 미국, 그리고 이스라엘 = 중동에서 현재 벌어지는 내전이 이런 복잡 다단한 원인과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모두 `미국'과 연루됐다는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반미 자주노선의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하자 미국을 위시한 서방권은 하마스의 반미ㆍ반 이스라엘 정책을 문제 삼아 하마스 내각을 부정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을 봉쇄하는 `하마스 고사작전'을 폈다. 이는 팔레스타인 경제악화와 극심한 생활고로 이어졌고 하마스의 지지도가 흔들리자 미국에 유화적인 노선을 걷는 압바스 수반은 이 틈을 타 조기 총선을 시도했던 것이다.

하마스와 대치 관계인 미국과 이스라엘은 즉시 이를 환영했고 하마스는 `압바스 수반이 미국을 등에 업고 민중이 선택한 내각을 몰아내려 한다'며 파타당과 일전을 불사했다. 레바논 내전상황 역시 미국 및 이스라엘과 떼어놓을 수 없다.

현재 시니오라 총리 지지세력의 중심엔 반 시리아 노선을 지지하는 기득권층인 수니파와 기독교인들이 있고, 반 정부 세력은 헤즈볼라를 추종하는 저소득 계층인 시아파와 시리아가 지원하는 기독교계인 에밀 라후드 대통령의 지지자다. 1975년 시작된 내전기간 레바논 내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시리아를 둘러싼 노선차이가 레바논 내분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재의 내분이 미국이 사실상 방조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서 비롯됐고 반미ㆍ반이스라엘 노선인 헤즈볼라를 해체를 원하는 미국과 이스라엘로선 이런 레바논의 자중지란을 헤즈볼라 제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라크의 끝없는 폭력사태는 두말 할 것도 없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시작됐음은 물론 이라크 내 무장세력의 총구가 미국 등 외세의 개입을 몰아내려는 대미항전에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결과에서 볼 수 있듯 현 미국 정부의 이라크 정책은 실패로 낙인찍혔고 이라크의 유혈 사태의 책임에서 미국은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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