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의 추억
장독대의 추억
  • 석산 진성영
  • 승인 2018.12.24 2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1970년 7월, 집 마당 어귀에 우물을 파서 50년의 시간 동안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했었다. 섬은 늘 식수 문제로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2007년 섬사람들의 생명수 ‘육동 수원지’(전남 진도군 조도면 육동길에 위치한 상수원지)가 완공되면서 현재는 상하 조도 섬주민들이 물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 이후에도 시골집 우물은 생활용수로 요기나게 사용했었고, 여름이면 수박을 비롯한 과일들을 줄에 매달아 놓으면 냉장고 역할을 톡톡히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주변으로 어머니가 제일 애지중지(愛之重之)하게 생각했던 장독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2017년 3월, 새집을 짓기 위해 옛날 집의 흔적들은 모조리 콘크리트 속에 파묻혔고, 장독대는 지금의 새로 지은 집 옆에 조그맣게 틀을 잡았다. 
 

새로 만든 장독대 앞에서 휴식을 취하는 어머니 강복덕 님 ⓒ석산 진성영


어머니는 밭 일을 나가지 않는 날에는 늘 장독대 앞에 앉아 혼자 구시렁 대기가 일쑤였다.  

“염병할 놈들.. 그 좋은 장독 옹기도 몇 개를 깨 먹고..”

새집을 짓는 동안 세간살이에 대해 등한시했던 자식들에게 싫은 소리를 가끔씩 해댔다.  

​어느 날! 어머니의 장독대를 보기 좋게 꾸며줄 생각으로 아무렇게나 방치된 옹기들을 하나둘씩 집 주변으로 옮기고 바닥부터 시멘트로 골고루 펴 바르고 그 위에 옹기들을 가지런히 놓았다. 

어머니는 그곳에 앉아 하루 종일 지켜보면서 된장 독은 여기, 간장독은 저기.., 내게  지시를 했었다. 그리고 기존에 벽돌공들이 바닥에서 위로 세 칸 정도만 쌓고 철수해서 장독대보다 더 높이 있는 돌담이 떨어질 수 있다고 벽돌을 더 쌓으라고 해서 기존의 세 칸 위로 여덟 칸을 더 쌓았다.
 

새 집 옆에 장독대가 놓여 있는 모습 ⓒ석산 진성영


한 번도 벽돌 쌓기를 해 본 경험이 없었지만, 전에 벽돌공들이 한나절 동안 벽돌 쌓는 일을 도와주면서 유심히 어깨너머로 체득한 것을 실행을 해봤다. 약간은 삐뚤어진 벽돌도 간혹 있었지만 그렇다고 보기 싫지는 않았다.

그제야 어머니는 한 동안 새로 만든 장독대를 보시면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