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새섬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섬 바다는 가을처럼 넉넉함으로 고깃배들이 만선의 기쁨으로 풍어가를 부르고 있었다. 

아침 조반을 차려드리고 나니 어머니는 녹두를 따러 가자고 했다. 어머니의 하루 일과는 특별한 사항이 없는 한, 밭에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낙으로 여겼다. 혼자 계실 때는 1km 남짓한 거리를 보행 보조기를 이용해 왔다 갔다 하셨다. 그러나 막내아들이 귀향 이후에는 자동차를 이용해서 밭을 나가셨다. 

녹두가 검게 익어가는 계절은 어머니를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일을 할 때면 육신의 아픔을 잠시 잊을 수가 있다고 하셨다. 어디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골병의 상흔들은 어머니 세대들에게 훈장처럼 따라다닌다. 
 

2017년 10월, 녹두를 펼쳐 널고 잠시 쉬고 있는 어머니 강복덕 님.  ⓒ석산 진성영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하루 종일 따놓은 녹두를 챙긴 후.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옛집을 허물고 그 위 새로 지은 집 테라스에 녹두를 펼쳐 널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아이고! 죽겠다" 며 흙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겉옷을 벗으려는 순간! 다가가 벗겨 드렸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어머니의 육신의 반사 신경은 일을 할 때는 일에 신경 쓰느라 몸이 아픈 줄 모르지만, 일이 끝났을 때는 온 삭신이 아프고 쑤시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구멍 난 줄무늬 빨간 양말을 벗겨 드리는 동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헤지고, 구멍 난 곳을 꼬매고 꿰맨 빨간 양말은 어머니와 함께한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고 있었다.
 

어머니의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줄무늬 빨간 양말’. ⓒ석산 진성영


양말 살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시골 어머니들의 오래도록 몸에 배어있는 근검절약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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