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5년 전 겨울, 저녁 8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에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따르릉, 따르릉! 막두?”

매일 저녁 8시~9시 사이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13년 전 아버지가 작고 하시고 난 다음부터 더욱 외로워하는 어머니를 위해 매일 안부를 체크하여 갑작스러운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 중 하나.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 아니 내가 귀향 전까지 매일 빠지지 않고 전화를 드렸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 시간에 전화가 오면 단 번에 막내아들이 전화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평소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면 “일 그만 하세요?”라고 하지 않았다. 시골 양반들은 소일거리가 유일한 낙이고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이런저런 어머니의 일상에 대해 묻자, 오늘은 무슨 일을 했고 하루 일과를 막내아들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 해 주었던 어머니다.

다가오는 봄에는 시골 밭 언저리에 황칠나무를 심으려고 한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대뜸 “뭐할라고 돈 들어갈 텐데”하시며 돈 걱정을 먼저 하셨다.

“어린 묘목을 구입 해 심으니까 돈이 별로 안 들어간다”라고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이듬해 식목일을 며칠 앞두고 목포에 사는 셋째 형과 주말을 이용해 섬으로 들어가 총 50그루의 황칠나무를 심었다. 

황칠나무를 심은 만큼 총 600평의 밭은 줄어들었고, 어머니의 일의 활동성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사실, 황칠나무를 심은 궁극적인 목적은 연로하신 어머니의 일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5년전 심어 놓은 황칠나무. ⓒ석산 진성영


그러나, 어머니의 일 손을 줄여주기 위한 생각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2017년 시골로 귀향하기 전까지 여름휴가는 매번 고향 섬으로 내려 갔었다. 

그날도 어머니와 함께 이른 참깨 수확하는 것을 도와주다 몇 해 전 심어놓은 황칠나무를 살펴보니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한 게 아닌가? 그 동안 어머니는 밭 일을 하면서 황칠나무 밑에 무성하게 자라나는 잡초들을 끝없이 정리했다고 한다. 

세상의 어머니는 똑같다. 

어머니의 일을 덜어드리기 위해 심은 황칠나무였지만, 심기 전보다 더 많은 잡초가 번성해 일손을 더 바쁘게 만든 셈이었다. 

잡초 하나 없이 관리했던 밭은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에야 비로소 어머니의 노고가 얼마나 컸는지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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