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눈이 아플 정도로 각양각색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미지들이 난무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온갖 모양의 도시 간판은 말할 것도 없고, 버스나 지하철의 광고물, 다양한 장르의 영화 선전물, 각종 잡지의 표지, 그리고 최근에는 TV와 인터넷 등 전자매체들에서 쏟아지고 있는 디지털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시시각각 넘쳐나고 변화하는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은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도 엄청난 변화를 몰아왔으며, 현재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TV 부처' - 백남준. ⓒ광주문화재단 제공


지난 1960년대에 서구가 산업사회에서 후기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TV, 비디오를 비롯한 전자매체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현대미술에서는 비디오 아트(Video Art)라는 전혀 새로운 매체미술 (Media Art)이 백남준 (白南準, 1932- )에 의해 첫 선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매체미술은 오늘날 컴퓨터 아트 (Computer Art), 또는 인터넷 아트 (Internet Art)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되며, 오늘날 우리는 미술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혁명적 이미지, 즉 “디지털 이미지”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의 역사, 특히 서양미술의 역사는 “이미지의 역사”, 또는 “다양화되고 변화되는 이미지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미술은 성상(Icon) 등의 “신성한 이미지”와 함께 온갖 이용 가능한 세속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물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거치면서 르네상스 이후 근대미술의 원리와 방법을 파괴하는 혁명적인 현대미술이 등장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디지털 이미지는 오히려 현대미술에 있어서 이미지의 다양화 내지 변화의 한 예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이미지는 종래의 서양미술의 이미지들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디지털 이미지의 등장 이전의 모든 서양미술이 갖고 있던 종래의 이미지는 정태적(情態的)인 이미지이며, 실재(實在)하는 사물을 재현하거나 상징하는, 또는 그것을 추상하는 이미지, 아니면 작가의 정서를 표현하는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디지털 이미지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움직여지는 동적인 이미지이고, 실재하는 그 무엇도 재현하거나 표현하지 않는, 즉 실재성이나 표현성이 없는 이미지인 것이다. 따라서 재현적인 것도 아니고 표현적인 것도 아닌 이러한 이미지들은 “비-미술적인” 이미지라고 간주할 수 있으며, 오늘날의 현대미술에서 문제가 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것과 관련하여 현대의 대표적인 매체미술 이론가인 페터 바이벨 (Peter Weibel, 1944- )은 매체미술 이전의 고전적인 미술이 사용하는 미학은 이미지의 “정태적인 존재개념 (ein statischer Seinsbegriff)”에 근거하는 것이고 비디오 아트, 컴퓨터 아트 등의 디지털 이미지를 사용하는 매체미술의 미학은 정태적인 존재개념 대신에 이미지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적인) 상태개념 (ein dynamischer (interaktiver) Zustandsbegriff)”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이벨의 의견을 따른다면 현대의 미술비평을 포함하는 종래의 미술비평은 이러한 전통적인 미술의 정태적인 존재개념에 입각한 것이므로, 오늘날의 디지털 이미지 시대의 현대 미술비평에는 매체미술의 미학에 근거한 새로운 이론과 방법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09호(2018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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