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깨어있었다

화창한 날이었다. 예전에는 미곡 창고였을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평소의 생활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정갈한 정리와 깔끔하게 정돈된 작업실은 현재의 작가를 있게 했을 원동력으로 보였다.

높은 천장 아래 2층으로 마감된 곳을 작가는 판화실이라고 설명했다. 판각하고 찍어낸 시간이 그리 지나 보이지 않은 판화지들이 바닥에 누워 스스로 제 몸을 건조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세월이 그대로 묻어 있는 조각칼과 판화제작에 필요한 도구들이 작가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며 잘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긴 창으로 햇살이 들어와 화병에 꽂아둔 들꽃들에 꽂히고 있었다. 첫 방문이었다.

그때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조진호 화가. ⓒ광주아트가이드


그림과 작업이 전부인 전업작가였다. 몇 년의 광주시립미술관장을 역임하고 다시 전업화가로 돌아왔다. 작가였으니 전업작가로 돌아온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관장을 마감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작업이었고 그동안 묵혀 두었던 목판화에 전념했다.

작가는 목판화 전시를 앞두고 “내 작업의 뿌리는 광주의 오월을 발언하고 반영한 목판화였다”며 “80년 당시 작업실이 조선대학교 근처에 있었다. 작업실로 찾아온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학살 현장을 목격했고, 집에서 나와서 다시 작업실로 걸어오는 동안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가가 선택한 것은 목판화였다. 목판에 자신의 바람과 열망 광주의 학살을 기록하듯 판각했다. 손에 든 조각칼은 그에게 총과 칼 이상의 그 무엇인 함성이었다.

목판화 전시는 서울 나무아트 갤러리가 시작하는 ‘한국현대목판화 발굴 프로젝트’ 첫 번째 주자로 초청돼 마련한 전시였다. 작가는 ‘무유등등(無有等等)’이란 주제로 마련한 전시에서 1980년대 목판화가 갖고 있는 질박한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전시된 40여 점의 작품들을 통해 치열했던 1980년 5월민중항쟁의 ‘오월의 모습’을 일깨워주었다. 또, 지난한 세월 동안 광주의 아픔을 어루만져온 무등산과 통일 염원을 담은 백두산 풍경뿐 아니라 그가 오랫동안 천착하며 작품에 새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모습에서 그가 생각하는 삶의 편린을 보여주었다.

흥겨운 농악대 모습, 오일장을 찾은 시골 부부, 홀로 담배 피우는 노인 등 우리들의 삶 속에서 언제든지 만나며 부대낄 수 있는 생활 속의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작가는 1980년대 목판화 작업을 통해 올곧게 따뜻한 저항의 메지지를 담아왔다. 1984년과 1986년 두 차례 목판화 개인전을 열었고 ‘오월시’ 동인과 함께 오월시 판화집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있으라’ 제작에도 참여했다.

觀_ 세상을 바라보다

오랜 시간 수채화 작업에 눈길을 주었다. 담백하면서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작가는 “물이 주는 느낌이 가벼우면서도 깊었다. 오랜 시간 수채에 눈길을 두었던 이유가 되겠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작업이다. 먹, 목판, 수채, 혼합재료 등으로 가장 도드라진 재료는 먹이다. 작가는 먹의 농담과 먹과 물의 순혈 기능을 따라 해바라기를 그렸다. 먹으로 완성된 해바라기와 무채색으로 일관된 캔버스 안의 빛깔은 어둡고 눅눅해 보인다.

그동안 우리가 보았던 해바라기의 밝고 화사한 이미지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고흐로 대표되는 해바라기 역시 선명한 노란색과, 싱싱함과 시들어가는 시간과 빛을 함께 갖고 있었다. 작가의 해바라기는 여러 가지 모습과 재료로 캔버스 안에 존재한다.

10m를 꽉 채운 작업에서는 작가의 삶에 대한 성찰이 보인다. 일생을 통과한 작가만의 그 무엇.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그것. 조용하고 묵묵했지만 뜨거웠던 열망 같은 것들이 작업 안에 그대로 녹아 세상을 향해 발신하고 또한 스스로 발현된다.
 

조진호 - 觀2 145×450cm 종이에 혼합재료 2018. ⓒ광주아트가이드


작가는 “운주사와 석불석탑을 통해 삶과 현재,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판화로 형상화된 운주의 미륵불 앞에서 우리가 부처와 닮아있는 이웃들을 만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의 관장직을 역임하면서 내내 작업에 목말랐다. 작가들의 전시와 작업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작가였던 자신을 떠올렸다. 관장을 마감하고 목판화 전시를 비롯해 관(觀)을 주제로 전시를 갖는 것 역시 작가로서의 역할과 사회적인 책임감에서이다.

“생각해보면 한없이 가난하지만 작가였을 때가 가장 좋았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낮추면서 한 발 한 발 내면으로 깊이 침잠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작가여서 더욱 좋았다. 앞으로의 시간도 작업으로 충실해질 것이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과거보다는 더 깊어진 현재, 현재보다는 더 진전된 내일을 살아가는 작가가 될 것이다.”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09호(2018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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