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전문]

70년의 恨을 풀어준 역사적 판결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정의로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날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미쓰비시중공업으로부터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 동원된 피해자들과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며 총5억6,208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29일 대법원이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 4명고 유족 1명이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총 5억6208만원을 배상하라고 원심 선고를 확정한 후 김성주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증언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갈무리


너무 늦었지만, 정의는 결국 승리했습니다. 150만 광주시민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70년 한을 풀어주고, 눈물을 닦아준 이번 대법원 판결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랜 세월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고 현실과 맞서 싸워 오신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용기에 깊은 존경과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해 온 시민모임과 일본 나고야 소송지원회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판결은 인간 존엄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진실 위에 전진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엄중한 역사의 심판을 받은 미쓰비시중공업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진정어린 사죄와 함께 손해배상을 조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 정부 또한 국민과 뜻을 함께 하며 왜곡된 한일 역사를 바로 세우고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일에 더욱 매진할 것을 촉구합니다.

2018. 11. 29.

광주광역시장 이용섭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사건 주요 일지

- 1944년 5월경 광주전남(150여명), 대전충남(150여명) 지역 약 300여명의 소녀들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 동원

- 1944년 12.7 東南海(도난카이) 대지진에 광주전남 출신 소녀 6명 사망

- 1945년 10.21 귀국

- 1988년 12월 일본 나고야 시민들, ‘도난카이 지진 희생자 추모비’ 건립

- 1998년 12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결성

- 1994년 3월 양금덕할머니, 관부재판 원고로 소송에 참여

- 1999년 3.1 원고 5명,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소송 제기(피고: 일본정부・미쓰비시중공업)

- 2000년 12월 원고 3명 추가 소송 제기(나고야 지방재판소)

- 2005년 3.24 나고야 지방재판소 ‘기각’

- 2007년 5.31 나고야 고등재판소 ‘기각’

- 2007년 7.20 ‘나고야 소송 지원회’, 도쿄 금요행동(원정 금요시위) 시작

- 2008년 11.8 일본 최고재판소 최종 ‘기각’(패소 확정)

- 2009년 3.12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결성

-       〃 10.5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철수 촉구 1인 시위 돌입(~208회 개최)

-       〃 12월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지급 파문

- 2010년 6.23 13만5천명 항의서명 미쓰비시 및 일본정부 전달(도쿄 삼보일배 항의시위)

-       〃 7.14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문제와 관련한 협의” 수용 공식 발표

-       〃 7. 나고야 소송 지원회, ‘금요행동’ 잠정 중단

-       〃 11.16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철수

-       〃 11.8 미쓰비시와의 1차 본 교섭 개시(도쿄)

- 2011년 2.15 국민 10만명 1천원 모금운동 ‘10만 희망릴레이’ 운동 시작

-       〃 9.30 후생노동성 사회보험심사회, 후생연금 99엔 재심사청구 기각 결정

-       〃 11.15 ‘10만 희망릴레이 보고 기자회견’ (12만 2800여명 참여)

- 2012년 3.15 광주광역시의회, 근로정신대 피해자 지원 조례 본회의 통과.

-       〃 5.24 대법원, 日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에 ‘배상’ 취지 파기환송

-       〃 7.6 미쓰비시중공업과 교섭 최종 결렬(총 16차례 개최)

-       〃 8.10 ‘나고야 소송 지원회’ 2차 금요행동 도쿄에서 재개

-       〃 9.26 ‘제1의 전범기업 미쓰비시 불매 범국민선언운동’ 캠페인 시작

-       〃 10.24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1차 손해배상 소송=원고 5명(양금덕, 김성주, 이동련, 박해옥, 김중곤)

- 2013년 11.1 광주지방법원, 피고 미쓰비시중공업에 ‘배상’ 선고

- 2014년 2.27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 추가 2차 손배 소송(원고 4명)

- 2015년 5.20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 소송 3차 손배 소송(원고 2명)

         〃 2.4 일본연금기구, 2차 소송 원고 김재림,심선애,양영수 3명에 대해 후생연금 탈퇴수당 199엔 지급 파문

         〃 6.24 1차 소송 광주고등법원 항소심 원고 승소

- 2017년 8.8 광주지방법원, 3차 소송 원고 일부 승소

- 2017년 8.11 광주지방법원, 2차 소송 원고 일부 승소

- 2018년 11.29 대법원,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1차) 선고기일

- 2018년 12.5 광주고등법원,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2차) 항소심 선고기일

- 2018년 12.5 광주지방법원 항소부,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3차) 항소심 선고기일

** 제공: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사건 개요

◯아시아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정부는 노동력 조달을 위해 1944.5월경 광주전남 및 대전충남지역에서 10대 어린 소녀 약 300여명을 “일본에 가면 공부도 가르켜 주고 상급학교에도 갈 수 있다”며 일본인 교장이나 담임선생 등의 회유에 의해,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돼 강제 노역 피해를 입음. 광주전남에서는 목포, 나주, 광주, 순천, 여수 지역에서 약 150명이 동원.

(※1944.12.7. 발생한 도난카이(東南海) 대 지진 당시 광주전남에서 동원된 6명 소녀들 사망)

◯1999년 3월~2008년 11월까지 일본 소송에서 최종 패소한 뒤, 2012년 5월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계기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와 유족 등이 2012년 10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심, 2심 승소에 이어 오는 11월 29일 오전 10시 대법원(1호 법정)에서 최종 선고 예정. (여자 근로정신대 사건으로는 국내 최초 대법원 판결)

1차 소송 승소(2013년 11월 1일 광주지방법원)에 힘입어, 뒤이어 소송을 제기한 2차 소송(원고 4명), 3차 소송(원고 2명) 항소심 판결도 오는 12월 5일 오후 2시(광주고등법원), 12월 14일 오후 2시(광주지방법원 항소부)에서 각각 선고 예정.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함께 일제강점기 전시 여성인권의 대표적 사례인 여자근로정신대 사건으로서는 최초의 판결. 또한 현재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15건의 소송 중 가장 많이 제소를 당한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관련 사건으로도 첫 판결.

** 작성: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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