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혹은 민족주의에 대한 관점은 민족을 고대로부터 존재해온 ‘원초적인 실재’로 보는가, 아니면 근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구성물’로 보는가로 구분된다.

<상상의 공동체>의 저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왕조국가가 쇠퇴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시기에 나타난 특정한 ‘문화적 조형물’ 즉 역사적 구성물로 파악한다. 그리고 민족을 일컬어 ‘상상의 공동체’라 지칭한다.

다시 말해 민족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존재라는 것이 베네딕트 앤더슨의 요지다.
 

지난 10월 21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제1회 광주퀴어문화축제장. ⓒ광주아트가이드


한국은 민족주의의 색채가 강한 국가다. 백의민족, 배달의 민족, 단군의 자손 등의 민족주의의 색채가 강한 말들이 늘 우리와 함께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제식민지배에 대항하는 담론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단군 이래로 이어온 한민족이 똘똘 뭉쳐 일본에 맞서 자주 독립을 성취해야한다는 민족사학자들의 대항 담론으로서의 민족주의는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

하지만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후에도 단일 언어 사용과 단일 혈통에 기반을 둔 민족주의가 지금까지 무비판적으로 통용된다는 점에는 반성이 필요하다.

배네딕트 앤더슨에 따르면 민족은 특정한 주체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생각해보자.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이란 존재하나 민족이 특정한 주체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그 주체는 누구이며 이들은 무엇을 위해 민족을 만들었을까.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에는 극단적으로 다투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과 함께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이 정상적으로 보이나. 그렇게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하면 무슨 이득이 있나.

한국 사람에게 시집 온 베트남 여성이 낳은 아이는 한국인의 피와 베트남인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한민족이 될 수 없나.

인류란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집합이다. 환경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를 낳는다. 사람은 문화를 통해 성장하기에 인류란 서로 다른 문화를 통해 서로 다르게 성장한 사람들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처럼 민족은 인류를 구분하는 허구의 개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사람들로 인류를 구분하는 것이 민족을 통한 구분보다는 더 자연스럽다.

서로 다른 문화를 지녔지만 인류는 사람이라는 공통성을 지녔기에 하나로 묶일 수 있다. 인류는 그저, 하나다.

싱클레어 : 그러니까 카인은 그럼 전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단 말인 거야? 성경에 있는 모든 이야기가 실제로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야?

데미안 :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중략)

싱클레어 : 그렇다면, 동생을 쳐 죽인 일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데미안 : 아니지! 죽인 건 분명 사실이야.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 하나를 쳐 죽였어. 그것이 정말 자기 형제였는지 그거야 의심할 여지가 있지. 정말 형제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결국 모든 인간이 형제잖니. 그러니까 카인과 아벨이야기는 어떤 강한 사람이 어떤 약한 사람 하나를 때려죽인 이야기인거야. -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인류는 하나지만 그 안에서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이 빈번히 발생한다. 얼마 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자 만든 ‘광장’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지난 10월 21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제1회 광주퀴어문화축제의 참가자들은 축제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욕설과 혐오의 말들을 들어야했다. 경찰이 제지하지 않았으면 무력충돌로 번질만큼 긴박한 상황을 목격하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다양성을 혐오로 대하는 습관을 체득한 것 같다. 세상은 다양화 되었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는 능력은 아직 부족한 것 같다.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정치세력이 특정한 세력(주로 약자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발 물러나 우리는 모두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나와 다른 타인을 혐오의 대상이 아닌 그저 ‘한사람’으로 보는 눈을 가졌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혐오가 인류를 먹어치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08호(2018년 1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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