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춘포 박 지 우

자주 지나치는 골목길에서 작가의 작업실이 있었다. 오며 가며 2층을 올려다보며 저곳의 작가는 무엇을 하며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했었다.

 계단을 올라 작업실 문을 열면서 아! 서예를 하는 곳이구나. 직감했다. 20년이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먹을 쪼개 색감을 만들고 붓을 들었다. 너른 바닥과 그곳에 깔려 있는 카펫을 보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엎드려 붓을 들고 있었을 작가가 상상되었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업과 작가로서의 중량과 시대적 고민까지. 염치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드러내놓고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는 주제들이었다. 창밖으로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먼 길을 걸어왔다
 

서예가 춘포 박지우 선생. ⓒ광주아트가이드


대학 1학년 때 스승을 만났다. 그길로 지금까지 버팀목이 되었다.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결국은 서예만이 자신의 도반이 되었고 남아 현재를 이룩했다.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서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선택 속의 한가지이니 당연하다 싶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서예는 도제교육으로 이루어졌다. 스승의 가르침 아래 같은 글씨를 쓰고 또 쓰고 몸에 자연스럽게 익혀질 때까지 다음을 기약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개성을 말살하는 도제교육의 공부보다는 누구나 배울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는 서예이니 차별화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가는 “예전에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면 이제는 참지 말고 말을 해야 한다. 말로 할 수 없는 서예에서 말을 할 수 있는 서예로 나아가야 한다. 

자기와의 싸움이기에 두 말할 나위가 없다.”며 “서예는 예술이다. 문자의 예술이다고 할 수 있다.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발현된 서예를 추구해야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서예의 과정을 그려본다. 엎드려 숨을 멈추고 붓을 들어 자신이 목적한 바대로 글씨를 써간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화지에 녹아든 먹은 지울 수도 감출 수도 덧씌울 수도 없다. 한 번의 붓질이면 그뿐. 더 이상도 없다.

어쩌면 서예는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 돌이킬 수도 지우개로 지우고 새로 지을 수도 없는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 나가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서예 역시 마찬가지였다. 좀 더 나아가기 위해 자기와의 부단한 싸움을 바탕으로 글씨 한 점에 철학과 정신을 담아내는 것.

모든 문자와 그림은 칼날에서 나왔다

어린 시절 조부의 서예 하는 모습을 잊지 못한다. 조부 역시 어린 손주의 손에 붓을 쥐게 하고 서예를 가르쳤다. 태어나면서 서예는 이미 환경으로 설정되어 있었고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늘 작가의 곁에 있었다.

작가는 “벌써 40여 년이 넘은 시간을 먹과 붓, 조부와 스승의 보살핌과 그늘 아래 있었다. 막연한 서예에 대한 이론과 실기를 깨우쳐 준 분은 스승이었다. 스승으로 인해 글씨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서예의 먹이 주는 농담 속에서 아자득몽(啞子得夢)을 꿈꾸고 있다.”고 고백했다.

서예는 우리의 역사이며 전통이다. 선조들의 지난한 학문의 결과이며 자기와의 싸움 속에서 탄생한 결과일 것이다. 

처음 입문할 때 서예오체(書藝五體)인 해서(楷書), 행서(行書), 예서(隸書), 초서(草書), 전서(篆書)를 배우는 이유는 어디로 가야할 지를 결정하기 위한 방향설정의 공부라고 할 수 있다. 보고 쓰고 익히며 자신의 서체를 완성해 가는 첫 단계인 셈이다. 
 

춘포 박지우 선생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작가는 “명화는 백년이 지나도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선물한다. 무릇 우리가 쓰고 있는 서예 역시 그래야 한다.”고 말하며 “서예의 본질은 서로의 관계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부딪히고 깨지며 서예의 한 획을 찾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도(道)’와 ‘덕(德)’의 명제를 가진 작품은 현재의 상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이 서예 작에 사전적 의미의 도덕은 중요하지 않다. 

한 점은 검은 바탕이고 한 점은 비어있는 화지 본연의 바탕이다. 작가는 도덕의 일반적 개념 뒤에 숨어 있는 이중성을 표현하며 중의적 표현으로 삶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추사 김정희는 날씨가 화창하지 않으면 붓을 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예민한 서예를 한 것이다. 먹과 붓이 만들어내는 서예의 힘에 경계를 구별하는 심미안, 검은 서체 한 점에 사유를 담을 수 있는 격(格)이 필요할 때이다.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08호(2018년 1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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