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그 인간들은 원래 그래
[이기명 칼럼] 그 인간들은 원래 그래
  • 이기명 <팩트TV>논설위원장
  • 승인 2018.10.2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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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코미디 금지구역

무대에서 펼쳐지는 코미디를 보며 관객은 즐거워한다. 주인공인 코미디언은 어떤가.

“출연 직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대에 나가 최선을 다해 관객을 웃겼다. 공연이 끝나 막이 내리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고인이 된 어느 코미디언의 고백이다.

메릴린 먼로의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나 세실 B 데밀의 ‘지상 최대의 쇼’는 화려함의 극치다. 그 화려함 뒤에 그늘은 없는가. 세상이라고 하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온갖 사건은 슬픔과 기쁨의 교차다. 왜 쇼에 등장하는 ‘피에로’의 모습은 슬퍼 보이는가. ‘찰리 채플린’ 코미디에는 짙은 여운이 남는다. 코미디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러므로 나는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

채플린이 한 말이다. 우리 국회에서 벌어지는 코미디는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항상 저질 코미디다. 여운이 없는 코미디다.

■겁먹은 벵갈 고양이와 ‘어처구니’

지난 10월 10일. 국정감사장에는 색다른 손님이 등장했다. 벵갈 고양이다.

“퓨마 새끼와 비슷한 동물을 하나 가져왔다” 

“사살된 퓨마와 아주 비슷한 것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퓨마를 너무 고생시킬 것 같아서 안 가져왔다” 

“동물도 아무 데나 끌고 다니면 안 된다. 이 자그마한 것을 보시라고 데려왔다”

철창 안에 갇힌 벵갈 고양이는 불쌍하지 않은가. 국감장에서 벌어진 서글픈 코미디다.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것도 등장했다.

“헤이 클로이∼” “헤이 클로이∼”  

로봇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목메게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내가 사투리를 쓰니까 서울 로봇은 못 알아듣는가 보네” 헛웃음을 흘리는 의원은 자신의 행위가 국사에 얼마나 이바지를 한다고 생각했을까. 결국 사투리가 유죄다. ‘쇼 좀 그만하라’는 로봇의 소리가 들린다.

‘아시아에서 야구 우승 하는 거 힘들지 않다’ 선동열 감독에게 던져진 의원의 질타다. 야구선수들이 기가 막혀 웃었을 것이다. 문이 열린 남의 집(기재부)에서는 주인의 허락 없이 물건을 들고나와도 괜찮다는 국회의원도 있다.

국감장에 30m짜리 현수막도 등장했다. 맷돌을 들고나와 손잡이를 뽑아 들고 ‘어처구니’가 없다고 탄식하는 의원. 태권도복을 입은 거구의 국회의원과 알록달록 한복도 등장했다. 국감장은 이래서 심심치가 않다.

1950년 2월 9일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상원의원은 웨스트버지니아주 여성 공화당원 대회에서 폭탄 발언을 한다.

"국무부 내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이 여기 있다!“

거짓이다. 그가 빨갱이 명단이라고 흔든 종이서류는 휴지였다. 근거 없는 빨갱이 명단 때문에 과학자 로젠버그 부부가 사형당하고 찰리 채플린이 미국에서 쫓겨났다.

아인슈타인과 월트 디즈니, 트루먼, 아이젠하워 대통령까지 의심받았다. 옷을 벗은 공직자만 5,300여 명에 이른다. 매카시도 1954년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찰리 채플린은 울었을까 웃었을까.

장군의 아들이라는 김두한은 국회의사당에 인분을 던졌고 이승만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라는 명언을 남겼다. 오늘의 국회를 보면 무슨 말을 했을까.

국회는 쇼 장이 아니다. 당신들이 하는 쇼에 국민은 지쳤다. 서울시청을 항의 한다며 쳐들어 간 김성태를 일컬어 조원진이 한 말이 있다. ‘원래 김성태는 그런 인간이야’ 인공지능 로봇이 이러지 않았을까. ‘서글픈 코미디언들’

■대한민국은 우리나라다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JSA라는 곳이 있다. 남과 북의 군인들이 마주 보고 있는 곳이다. 꼿꼿하게 서 있는 남북의 청년들. 비극의 상징이다. 요즘 JSA가 변하고 있다. 민간인이 그 안에서 자유스럽게 다닐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비무장지대의 지뢰는 제거됐다.

남과 북 사이에 철도와 도로가 연결이 될 것이다. 금강산 관광도 다시 재개 될 것이다. 개성공단도 문을 열 것이다. 바로 우리들 눈앞에 와 있는 것이다. 한반도가 변하고 있다. 이건 코미디가 아니다.

한미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가 연기됐다고 발표됐다. 하루가 멀다고 남북의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 이것은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은 일들이다.

잠시 눈을 밖으로 돌려보자. 세계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움직임을 쫓는다. 세계의 화약고라는 분단 한국의 긴장이 훈풍으로 녹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순방을 하면서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교황청을 방문했지만 `디모테오`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기도 합니다"

교황 성하를 만난 가톨릭 신자인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디모테오)의 소망은 무엇일까. 조국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뿐이었으리라고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 교황은 김정은 위원장의 북한초청을 수락했고 교황의 북한방문이 상징하는 의미는 표현할 길이 없다. 교황의 축복 속에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기를 온 겨레가 기도해야 한다. 

대통령의 숨 가쁜 순방외교를 보면서 국민들은 감동한다. 이럴 때 야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마음에 없는 빈말이라도 해야 한다. 노고를 치하해야 한다. 조원진의 말대로 김성태야 원래 그런 인간이라 해도 김병준은 그러면 안 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지 않던가. 왜 그리도 인색한가.

김병준은 문재인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을 것이다. 그때 본 것이 이것인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큰길을 가고 바른 생각을 해야 한다. 김병준은 우선 가슴을 넓게 열어야 한다. 저토록 좁은 정치력으로는 절대로 집권 못 한다.

■대한민국은 주권국가다

미국은 자신을 가리켜 ‘세계의 경찰’이라고 한다. 한국전 참전이 자국의 이익을 감안했다고 해도 대외명분은 침략의 응징이었다. 미국은 세계최대 강국이다. 오지랖도 넓다.

한반도의 평화도 미국 손에 달려 있다. 미국과 김정은의 줄다리기를 보면서 세계가 놀라는 것은 김정은의 결단이다.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는 그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북한을 지켜 줄 것이라고는 오로지 핵이라는 믿음으로 핵을 개발했던 김정은이 이제 그는 핵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그 대신 미국의 종전선언과 북한경제 제재 철회를 요구한다.

북한은 이제 과거의 북한이 아니다. 평양을 가보면 놀라운 발전을 목격하게 된다. 시장이 번창한다. 고층빌딩은 강남이 놀랄 지경이다. 이런 경제적 번영을 김정은이 포기할 것인가. 김정은도 이제 경제발전에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북한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데서 북한과의 협상은 출발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과 북한과의 전향적 교류에 신경을 쓴다. 철도 도로 금강산관광 등이 이루어지면서도 한국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대상은 미국이다. 미국은 뗄 수 없는 동맹국이다. 6·25전쟁 당시 배고픈 우리는 얼마나 많은 미국 밀가루로 배를 채웠는가. 한국을 지켜 준 고마움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보다 더 자주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주권국가다.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설파한 ‘우리는 하나’와 평화 번영이라는 믿음을 저버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자주적인 민족이 대우를 받는다. 혹시나 미국의 비위를 상하게 해서 문제가 되면 어쩌나 걱정을 하는데 할 말은 해야 한다. 할 말을 못하는 정부를 누가 대우하겠는가.

■미국은 우방이다. 그러나

외교란 일방적일 수가 없다. 서로가 이득이 있어야 한다. 혼자만 이득을 보려고 하면 안 된다. 인간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말이고 말로 소통하고 말로 성취한다. 제아무리 제갈공명 같은 재주가 있어도 말을 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말은 해야 맛이다.

흔히들 미국을 상전이라고 한다. 그것은 현실이다. 우리의 의지가 미국으로 인해서 좌절된 것은 하나둘이 아니다. 오늘의 남북 현실에서도 미국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다. 자존심이 상해도 부인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사전 조율이 있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서 마땅치 않은 미국의 시각이 있음을 알고 있다. 어쩔 것인가. 대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시콜콜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못한다. 아무리 한국이 미국의 우방이라 할지라도 미국은 미국의 이익이 있다. 필연적으로 마찰이 생긴다. 이때 할 말을 해야 한다. 한국은 한국의 이익이,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서로 조율하고 타협해야 한다. 무조건 따라가는 것은 타협이 아니라 굴종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 인간들은 모두가 그래

정당의 존재는 정권을 창출하는 데 있다고 한다. 어떻게 창출하는가. 경쟁해야 한다. 그럼 한국의 정당은 어떻게 경쟁하는가. 싸우는 것을 경쟁이라 여기는가.

한국의 국회는 싸움터다. 이유 없는 싸움터다. 여야를 막론하고 상대 당의 정책은 우선 반대부터 하고 본다. 아니라고 할 자신이 있는가. 이래서는 정치가 안 된다.

분단 이후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부드러워진 적이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냉면 그릇을 보며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 되겠구만’이라고 한 말이 상징하는 의미를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분단을 극복하고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사라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야당도 당연히 협력해야 한다. 남북철도와 도로의 연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이 같은 일들이 남과 북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옴을 모르는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들이 모여 국정을 의논하는 자리다. 국회는 개인의 홍보를 위한 선전장이 아니다. 매일같이 국회에서 쇼하면서 얼마나 국민을 절망시키는지 모르는가.

박용진 의원을 보라.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폭로하지 않았나. ‘어처구니’를 들고나와 ‘어처구니’ 없는 짓이나 하는 국회의원이 국민에게 무슨 도움을 준단 말인가. 무엇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일인지는 생각해야 한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국회는 이제 갈 길을 제대로 가야 한다. ‘그 인간들은 모두가 그렇다’는 조원진의 말이 맞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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