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보라시옹-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 초청전 ... 11일~12월30일까지 5.18기록관서

프랑스는 1500명 처형ㆍ38000명 수감 등 엄혹하게 단죄
5ㆍ18 책임자 처벌은 겨우 16명…피해자는 모두 5517명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단죄와 5ㆍ18 학살 책임자에 대한 처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시회가 광주에서 열린다.

2014년 프랑스 파리 국립기록보존소(내셔널 아카이브)에서 맨 처음 열린 ‘라 콜라보라시옹(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 비시 파리 베를린 1940~1945’ 전시회가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의 초청으로 오는 11일부터 12월30일까지 기록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패탱 히틀러 기념엽서. ⓒ5.18기록관 제공


8일 5ㆍ18기록관은 이 전시는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가 소장한 각종 자료를 중심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나치에 협력했던 부역자들의 반역행위와 반인도적 범죄, 나치의 지배정책 등을 고발하는 초청전이다.

광주 전시는 38년 만에 5ㆍ18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되고, 얼마 후면 5ㆍ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공식 출범하게 됨에 따라 원전시 구성에 곁들여 ‘파리-5ㆍ18 광주, 끝나지 않은 과거청산’이란 서브타이틀을 달고 ‘다시 시작하는 광주의 과거청산’ 패널 등을 특별제작, 진상규명의 당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포스터. ⓒ5.18기록관 제공


한국에선 2016년 서울 전시에 이어 두 번째인 광주 전시는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 쪽에서 광주를 특별히 선택해 마련됐다.

5ㆍ18기록관과 함께 이 전시를 주관한 민족문제연구소 쪽 한 관계자는 “국립기록보존소 쪽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역사자산인 5ㆍ18을 갖고 있는 광주에서도 프랑스처럼 과거청산 작업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진행되고 있다는 데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광주 전시를 강하게 주문했다”고 밝혔다.

전시 구성은 5ㆍ18 부분을 비롯해 ‣콜라보라시옹의 주역들 ‣공공의 적 ‣경찰조직의 콜라보라시옹 ‣문화예술계와 언론계의 나치 부역 ‣경제계의 나치 부역과 강제동원 ‣가자, 전선으로! 독일군과 함께 등 크게 8개 섹션으로 이뤄져 있다.
 

반유대 만화. ⓒ5.18기록관 제공


‘과거사 청산의 답은 프랑스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프랑스는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단죄가 엄혹했다.

나치 협력 혐의로 35만여 명을 조사했으며, 12만 명 이상을 법정에 세웠으며, 이 중에서 1500여 명을 처형하고 3만8000여 명을 수감했다.

해방 직후의 혼란기에는 9000여 명이 약식 처형됐다. 그렇지만 프랑스는 7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나치 부역자들을 추적하며 처벌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35년간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고도 단 한명의 친일파도 처단하지 못했다. 5ㆍ18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또한 미흡하기 짝이 없다.

5ㆍ18 기간에 발생한 피해자는 모두 5517명(광주시의 1~6차까지 5ㆍ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집계)에 이른다.

5월18일부터 27일까지의 사망자는 155명이며, 부상 후 사망자 110명, 행방불명자 81명, 부상자 2461명, 연행 구금 부상자 1145명, 연행 구금자 1447명, 재분류 및 기타 118명 등이다.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처형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고, 대법원 선고형량대로 옥살이를 한 사람도 없다. 전두환을 포함해 겨우 16명이, 그것도 가볍게 죗값을 치렀을 뿐이다.

사실상의 ‘5ㆍ18 총지휘자’인 전두환도 무기징역은커녕 금방 풀려났고, 그의 회고록에다 “난 광주사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거짓기록까지 남겨놓고 있다.
 

전남대 정문. ⓒ5.18기록관 제공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정부기관이 주체가 되어 국가의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낸 이 전시는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증좌다”며 “5ㆍ18 진상조사 작업도 프랑스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를 깊이 새기면서 진행돼야 하며, 우리의 역사 인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11일 오전 10시30분 5ㆍ18기록관에서 열리는 개막식에는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 르네 니콜라 우즐로 부소장과 함세웅 이사장 등 다수의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콜라보라시옹(La Collaboration)이란?

프랑스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했던 때를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대문자 ‘C’로 표기되는 ‘콜라보라시옹’은 그 암울했던 시기 프랑스의 ‘대독(對獨)협력’을 뜻한다. 

비시 정부를 이끌던 필리프 페탱은 아돌프 히틀러 총통과 정상회담을 한 후 1940년 10월 30일 라디오 연설에서 “오늘 나는 협력의 길에 들어선다”고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협력(Collaboration)’이라는 단어는 역사적 용어로 바뀌었다.

국가 차원의 협력을 선택한 비시 정부 지도자들, 경제협력을 수행한 기업가들, 나치 찬양의 나팔수가 된 언론인과 문화예술인들, 나치즘의 파수꾼을 자처한 파리의 ‘콜라보들(협력자들)’, 유대인 강제이송에 협력한 경찰과 레지스탕스 탄압에 앞장선 민병대원, 밀고와 고발을 일삼았던 일반 시민까지 나치 부역자의 종류는 다양하고 광범위했다. 

프랑스는 해방 후 전면적인 나치 부역자 숙정을 통해 이들을 단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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