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암미술관(관장 채종기)에서는 오는 31일까지 <은암미술관 청년작가 초대전-Mixed Signal 황정후>전을 개최한다.

황정후 작가는 그동안 꾸준히 작업해온 과일시리즈, 또 사진작업의 시작점이 되었던 마스크시리즈 사진작품과 함께 꼴라주기법으로 제작한 신작 ‘Mixed Souvenir’ 시리즈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07_Fruit_Still Life 123, 2017, Pigment Print, 90x120cm. ⓒ황정후


특히 이번 전시는 황정후 작가가 광주에서 여는 첫 번째 개인전으로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황정후 작가의 작품들은 일상적인 것들과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문맥에서 벗어난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과일 시리즈를 예로 들면, 방울토마토, 포도, 멜론, 자몽, 바나나 등 그가 다루는 각각의 개별적인 과일들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과일들은 그의 작품들 속에서 우리에게 낯선 모습으로 나타난다. 방울토마토는 마치 포도송이처럼 있으며, 멜론의 씨가 있어야 할 중심 부분에는 자몽이 박혀있다. 참외를 절단한 면에는 키위가, 바나나에는 의외의 과일들이 숨겨져 있다.

과일 시리즈 외에, 마스크 시리즈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즉 그의 마스크 시리즈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얼굴 대신 가면이 씌워져 있거나 투명한 랩으로 겹겹이 가려져 있어서, 그 인물의 진면목을 알아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01_Mixed Souvenir 003, 2018, Pigment Print, Collage on Canvas, 130.3x97cm. ⓒ황정후


이와 같은 경향은 최근의 작품에서 보다 분명히 나타난다. 수류탄 모양의 술병과 그에 걸 맞는 군용처럼 보이는 케이스, 그 위의 축하 꽃바구니와 종이로 제작한 소총의 이미지가 캔버스 위에 콜라주기법에 의해 함께 놓인다.

또한 냉장고에는 반찬이나 식자재 대신 작가의 책들이 빼곡이 정리되어 있으며, 카메라 필름과 음료수 등이 한 켠에 놓여 있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하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의 질서를 파악하고자 했던 모더니즘이나 개별적인 것 보다는 전체적인 구조를 우선시 했던 구조주의에서 벗어나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작업들은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내지는 구조주의이후(post-structuralism)의 사상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작업에서는 주체와 객체, 우월한 것과 저열한 것, 나와 너와 같은 이분법적인 또는 위계질서에 따른 구별을 찾아볼 수 없다. 서로 분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각각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자신들의 위치를 차지한다.

이처럼 전혀 다른 문맥에 있던 것들이 하나의 장소에서 보이는 것은 마이크로내러티브에 대한 강조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해결할 수 없는 분쟁에서의 개별적인 입장의 존중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08_Fruit_Still Life 131, 2017, Pigment Print, 90x120cm_resize. ⓒ황정후


하지만 진정 그의 작업이 의도하는 것은 이와 같은 혼합된 이미지들에 대한 다양한 관객들의 개별적인 반응일 것이다. 즉, 이로부터 나오는 의미의 다양성과 해석의 다양성이야말로 황정후의 작업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프랑스 쌩떼띠엔느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한 황정후작가는 10여년간 프랑스에 체류하고 귀국한 뒤 광주에서 꾸준히 작업하였고, 지난 2015년 광주시립미술관 북경창작센터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레지던시를 마친 뒤에도 개인적으로 북경 흑교예술구에 작업실을 열어 작업과 활동을 이어나가다가 지난해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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