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상대 원폭피해 손배소 패소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태평양전쟁말기 일본에 끌려가 노역에 시달리다 원폭에 피폭된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2일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이근목씨 등 피해자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재판이 열린 부산지법 법정을 나서고 있다.<<지방기사 참조>>ccho@yna.co.kr/2007-02-02 11:00:35/
재판권 관할, 피고자격 등은 원고측 손들어 줘



(부산=연합뉴스) 이종민 기자 = 일제하 강제동원 원폭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2일 원고 패소판결을 한 재판부는 패소의 주요 이유로 소멸시효를 꼽았다.

재판부는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쟁점이 됐던 재판권 관할문제, 피고자격 문제 등에 대해서는 원고측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소멸시효를 문제 삼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 채권권리행사 "이미 지났다" = 원고와 변호인측은 "강제징용 등이 국제법상 규정된 반인륜 범죄이기 때문에 시효문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변호인측은 또 "그동안 원폭 피해자들이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되지 않아 배상의 책임소재가 어디에 있는 지조차 몰랐기 때문에 시효시작을 한.일 청구권협정 문서공개 시점인 2005년 8월 26일로 잡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들이 피해를 본 시점은 1944년에서 1945년 사이로 우리 민법상 소멸시효인 10년을 지난 사안이어서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설사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진 1965년을 시효시작 시점으로 보더라도 이미 10년을 경과했고, 원고들이 한국원폭피해미쓰비시징용자동지회를 결성해 배상금 지급을 촉구했던 1974년을 시효 기산점으로 하더라도 이미 소멸시효는 완성됐다"고 지적했다.

소멸시효 기산점을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된 2005년 8월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일 청구권협정의 존재 또는 민간청구권 소멸을 규정한 일본 국내법의 제정.시행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원고들이 권리행사를 하는데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또 미지급 임금청구에 대해서도 "원고들은 미쓰비시 노무자로 강제노동을 하고 귀환할 당시 받지 못한 임금이 적어도 각 100만원이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고, 설령 원고들의 임금 채권이 있었다 하더라도 역시 10년의 소멸시효가 지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쟁점이 됐던 강제징용과 강제노역 또한 "국제노동기구 등 관련 국제법에는 범죄자에 대한 직접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원고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배척했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개인청구권의 존재 여부에 관해서는 재판부가 별다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이로써 상급법원의 판단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서 수차례 패소한 데 이어 국내법원에서도 일단 패소함으로써 앞으로 일본 기업을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졌다.

◇ 변호인.사회단체 "실망스런 판결" = 국내법원에 처음으로 제기된 이번 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이 내려지자 피해 당사자와 일제하강제동원진상규명시민연대 등 사회단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를 끝내 외면했다"며 재판부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원고측 소송대리인 최봉태 변호사는 "국내는 물론 일본 법원에서도 반인도적인 국제범죄에는 시효에 관계없이 판결을 내려왔는데 재판부가 시효만 기계적으로 적용해 판결을 내린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이어 "이번 패소 판결로 우리 정부는 이제 일본에 더 이상 법적인 배상과 사죄를 요구하지 못하게 됐을 뿐 아니라 요구하는 자체도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엿다.

강제동원진상규명시민연대는 "한국 사법부 만큼은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함께 해 주기를 바랐지만 패소로 끝나 지난 60여년 동안 고통스럽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온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얼굴을 들 면목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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