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과 맥주의 이데아 타파

신조어가 등장하면 경계심이 작동한다. 2000년대 중반에 등장했던 ‘웰빙’은 ‘잘 먹고 잘 살기’에 대한 광적인 신드롬을 낳았다.

뒤이어 등장한 ‘힐링’ 역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웰빙이나 힐링과 같은 신조어를 경계하는 이유는 신조어는 대게 신조어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언론의 합작으로 등장해서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치느님’이라는 신조어 역시 곱게 볼 수가 없다.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한국은 ‘닭 공화국’이다. 전 세계에 자리 잡은 맥도날드의 점포수가 대략 2만 4천개인데, 한국의 치킨 집 수는 약 2만 5천개다. 대표적인 번화가인 홍대에도 편의점보다 치킨 집의 수가 많은 실정이다. 어디 치킨 집의 개수뿐인가.

한국인들의 모든 놀이에는 치킨이 등장한다. 야구 관람은 치킨과 동일어가 되었고, 평창동계올림픽과 러시아월드컵도 치킨을 빼고는 논할 수 없다. 휴가철이 되면 바다, 강가, 산, 계곡은 치킨 냄새로 가득 채워진다.

한국에 치킨이 대중화 된 시기는 대략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랜차이즈 치킨집들은 ‘양념치킨’이라는 메뉴를 내세워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치킨 집들 역시 닭을 통째로 기계에 넣어 전기로 구워낸 ‘전기구이 통닭’이나 ‘시장 통닭’과 같은 재료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들은 통닭에 특정한 이미지를 부여해 통닭을 치킨으로 격상시켜 기존의 통닭과의 구별짓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의 등장이후에도 치킨은 지금처럼 열광적으로 소비되지 않았다. ‘치킨 열풍’의 시작을 딱 꼬집어내기는 힘들지만 이명박 정권을 빼놓고 치킨 열풍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이명박 정권 전까지 대기업은 양계업에 진출할 수 없었으며, 대기업의 일이라고는 개인이 운영하는 양계장에서 닭을 구매해 가공 및 유통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대기업도 닭을 기를 수 있도록 양계시장의 포문을 활짝 열었고, 대기업들은 이윤추구를 위해 많은 닭을 사육함과 동시에 닭 소비 촉진에 나섰다.

닭을 취급하던 대기업들은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사람들이 함께하는 모든 놀이에는 ‘치킨이 함께 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또한 맥주를 제조하는 또 다른 대기업들과 연계해 그들이 창출해놓은 치킨 소비시장을 더욱 확장시키고 견고히 다졌다.

이러한 맥락아래 오늘날 치킨과 더불어 맥주는 사람들의 놀이문화를 지배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러한 지배의 영향으로 치킨과 맥주를 이상화시켜 ‘치느님’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게 되었다.

필자도 치킨과 맥주를 즐겨먹는다. 치킨이 주는 고소함과 기름짐은 하루의 스트레스와 허기를 달래준다. 치킨과 함께 먹는 맥주는 치킨의 느끼함을 씻어내어 다시 치킨 맛에 즐겁게 빠져들게 만들고 맥주에 함유된 탄산가스는 순간적으로나마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치킨과 맥주만 먹어도 이렇게 즐거운데 하물며 놀이와 함께 즐기는 ‘치맥’이란 얼마나 더 즐겁겠나.

이러한 즐거움이 필자 스스로 그리고 치맥을 즐기는 수많은 이들 스스로가 찾아내고 만들어낸 즐거움이라면 참 좋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치맥은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거대권력과 거대자본이 만들어 우리에게 주입한 즐거움이라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현상들이 만연해있다. 치맥 하나도 편하게 먹으면 안 되냐는 반문에 필자는 그것이 문화비평의 역할이라 답하며 애정에서 나오는 걱정이라고 이해를 구하고 싶다.

러시아 월드컵이 한창이고 휴가시즌이 다가오고 있으니 치맥은 더욱 불티나게 팔려나갈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옥상에 마련된 하늘마당에는 벌써 몇 달째 치맥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조용했던 휴식공간이 푸드트럭에, 배달대행 오토바이의 굉음과 매연에, 그리고 그들의 타겟인 소비자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광주의 부끄러운 민낯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 그만 치맥을 멈추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중독 시킨 ‘치맥의 중독’에서 벗어날 때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