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정도 천년' 기념, 오는 6일부터 11월 11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은 '천년의 하늘, 천년의 땅'전시를 오는 6일부터 개최하며 개막행사는 오는 12일 오후 5시에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천년의 하늘, 천년의 땅'전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호남지방이 전라도 (全羅道)로 명명된 지 천년이 되는 해를 맞아, 유구한 호남의 역사를 환기 시키고 전라도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해 보고자 마련한 전시다.

전라남․북도 각 지역의 대학, 호남학 연구단체, 박물관 등을 비롯한 기관들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전라도 정도 천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와 전시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박종석 - 매천 황현, 종이에 혼합채색 220x1,480cm 2018.
조광익 - 담양아리랑, 한지에 수묵담채 317x990cm 2012.


타 기관과는 달리 광주시립미술관은 “천년의 하늘, 천년의 땅”전을 통해 사료적 전시나 학술적 고찰보다는 전라도 정신과 문화, 역사적 상징성을 현대미술을 통해 접근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호남의 정신과 예술의 맥을 재해석해 보여준다.

또한 작가 선정에 있어서도, 전라도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자란 전라남‧북도 작가를 중심으로 우선 선정함으로써 자연스레 전라도의 혼이 녹아들어간 작품이 전라도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했다.

전시구성은 전라도 천년 역사의 줄기를 상징적 주제로 구분하여 <발아하는 땅>, <의기의 땅>, <인문의 땅>, <예향의 땅>의 총 4개 섹션으로 나누었으며, 허달재, 유휴열, 박종석, 조광익을 비롯 원로작가에서부터 청년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 층의 중량감 있는 작가 13명을 참여시키고 있다.

작가군 만큼이나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서양화ㆍ한국화ㆍ영상설치ㆍ입체설치ㆍ도자ㆍ사진 분야 등)로 작가들은 섹션별 주제를 잘 부각시켜내고 있으며, 예술로 그려낸 천년의 역사현장은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서도 활용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전시의 도입부인 <발아하는 땅>섹션은 미분화된 문화의 원기(原基)를 품고 삶이 잉태되는 전라도의 시원성을 주제로 다루는데, 마종일의 설치작품 “그대, 풍요로운 땅에 서있는 당신이여”와 신창운의 “내 땅에서”시리즈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장 밖으로 나간 마종일이 개방감이 큰 미술관 로비에 500여개의 대나무 줄기를 자유분방하게 휘고 얽히게 하면서 설치한 대형 대나무 구조물은 전라도 땅의 잠재된 무궁한 에너지를 발산시켜 내고,

전라도의 색으로 인식되는 황토와 함께 금분을 입히고 긁어내면서 완성한 신창운의 '내 땅에서' 작품에는 생명을 불어 넣듯 땅의 혈맥에 수혈하는 군상 들이 등장한다.

 

송필용 - 땅의 역사-일어서는 백아산, 4 oil on canvas 130.3x194cm 1995.


두 번째 섹션인 <의기의 땅>은 전라도 정신의 한 축을 이루는 저항정신을 다루며, 송필용의 '일어서는 백아산' 연작, 조광익의 '담양 아리랑', 박종석의 '매천 황현'작품으로 구성된다.

투박한 붓질로 묵직한 울림의 백아산을 일으켜 세우는 송필용은 땅의 아픔을, 민초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고, 조광익의 역작 '담양 아리랑'의 9m가 넘는 화면은 담양 풍경을 배경으로 10인의 허상이 가로지르는데, 그 허상은 과거의 민중이자 오늘을 사는 사람들로도 읽혀진다.

또한 박종석은 15m에 달하는 종이 위에 구한말 대표적 역사학자로 국권참탈에 통분하며 자결한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에 관한 대서사시를 담았다.

 세 번째 섹션인 <인문의 땅>은 <의기의 땅>과 맥이 닿아 있다. 절의를 지킨 선비들이 호남지방에 대거 낙향, 은거함으로써 호남사림의 풍류문화와 누정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으며, 그 토양에서 빼어난 가사문학이 탄생하였다.

누정문화의 중심에 있는 소쇄원과 선비정신, 그리고 선비들의 높은 학문을 존경하는 민중들을 거두는 <인문의 땅>은 오상조의 “운주사” 사진작품, 정정주의 “소쇄원” 영상미디어 설치작품, 박경식의 “나무도 나도” 입체설치 작품, 조재호의 “개화(開花)” 다완시리즈 작품으로 구성된다.

마지막 섹션은 <예향의 땅>으로, 의(義)를 근간으로 퍼져나가는 전라도 예술이 정신세계로만 머물러 있지 않고 민중들, 사람들의 삶과 하나가 되면서 더 격조 있는 <예향의 땅>으로 완성됨을 보여준다.

<예향의 땅>은 전라도 예술의 정신성, 내재된 흥, 기억을 화두로 오윤석, 유휴열, 허달재, 홍범의 개성 넘친 작품이 설치된다. 오윤석의 작품 “re-record 불이선란도”, “re-record letter” 는 동양적 사유의 상징으로 추사의 글과 그림을 차용해서 칼 드로잉한 작품으로, 빛을 통해 흔들리는 이미지는 과거의 철학적 사유가 현시대의 맥락에서 어떻게 읽혀지는지 생각게 한다.

알루미늄 판을 두드려 주름을 만들고, 자유분방한 선과 채색이 거침없는 유휴열의 “生ㆍ놀이” 연작은 전라도의 흥과 멋이 마음껏 풀어 헤쳐진다.

직헌(直軒) 허달재는 의재(毅齋) 허백련 선생의 제자로서, 의재 선생이 추구 했던 정신철학과 남도 문인화의 전통 위에 있지만, 현대 한국화의 형(形) 을 이루기 위해 개성 있는 시도로 작업세계를 확장시켜 왔다. 이번 전시작품인 “매화”와 “포도”를 통해 직헌의 묵화의 멋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허달재- 백매, 290x200cm 한지에 혼합재료 2016.


홍범의 설치작품 “기억의 광장”은 사적인 기억들이 교류하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퍼즐처럼 생긴 나무 조형물은 장치된 기억의 드로잉을 오르골 소리로 재생하며 공간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만 만나질 듯 가까워지다가 비껴 가면서 멀어진다.

전라도 천년을 거슬러볼 때, 수많은 학자ㆍ 문인과 예인, 그리고 개혁적이고 걸출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지금도 선인(先人)들은 위대한 존재로 기려 지고 있다. 하지만 이 땅이 사유와 실천의 땅으로, 의향과 예향으로 불리며 풍성한 역사를 써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사가 흐르도록 마음을 실어 준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이번 전시는 조용히 말하고 있다.

'천년의 하늘, 천년의 땅'전은 오는 6일부터 시작해서 2018광주비엔날레 기간(11월11일까지)이 끝날 때까지 동시에 열리게 된다. 이 기간 동안에는 광주가 현대미술의 한 중심으로써 전국적 관심과 국제적 시선이 집중될 것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은 "뜨거운 현대 미술 현장에서 ‘전라도 정신과 예술’을 주제로 펼치는 이번 전시가 전시장 을 다녀간 관람객뿐만 아니라 전라도의 기억을 갖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전라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라도 문화와 정신의 뿌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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