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노동에 관한 글을 의뢰 받았을 때 맨 처음 드는 생각은 ‘예술과 노동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물론 전에도 이와 같은 생각을 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막연한 정도에 그쳤던 것 같다. 따라서 막상 이에 대한 글을 간단하게나마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막연함이 먼저 떠올랐다. 

이러한 막연함 다음에 드는 생각은, 예술에 대해서는 미약하지만 어느 정도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잘 몰랐던 노동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것이었다. 
 

카드 놀이하는 사람들- 폴 세잔.


그리고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물론 말만 알아봐서는 그 깊은 의미를 알 수 없겠지만, 그 말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노동에 대해 조금 다가가고 난 후 예술과 노동을 연결시켜 보고자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노동’이란 ‘일한다’, ‘힘쓴다’, ‘노력한다’는 의미의 한자 ‘로(勞)’자와 ‘움직인다’는 의미의 ‘동(動)’자가 합쳐진 말로 ‘(몸을) 움직여서 힘쓴다’고 설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몸은 크게 두 가지를 포함하는데, 하나는 육체적인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부분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노동이란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아니면 육체적인 것이든 간에 무언가를 ‘애써서 또는 힘써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양에서의 경우는 어떠할까. 서양에서 우리의 노동에 해당하는 단어는 ‘labor’와 ‘work’ 두 가지 모두 쓸 수 있으나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포괄적인 work보다는 labor가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labor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보다 분명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영어의 labor는 ‘힘든 일’, ‘고된 일’을 뜻하는 라틴어 ‘laborem’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주로 ‘몸을 써서 어떤 어려운 일을 하는 것(exertion of the body)’을 의미했던 말이다.

 예를 들면 옛날에 우리는 농사를 지을 때 손수 쟁기질을 하고 밭을 갈며 마치 고행의 길을 걷는 구도자처럼 매우 힘든 일을 했었다. 그리고 임산부가 아이를 낳을 때는 엄청난 진통이 따랐다. 이와 같은 경작의 행위나 출산의 과정 모두 labor라는 단어와 관계가 있는 말이다. 

나아가 어떤 ‘고통(pain)’을 견디는 행위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 참고 애쓰는 모든 행위를 가리켰던 말이 바로 labor라 할 수 있다. 이것이 18세기 산업혁명을 지나고 19세기에 와서는 자본가에 대비되는 하나의 계급으로서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발전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동·서양 모두에서 노동이란 어떤 고통을 수반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을 견디어 내야만 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는 조금 달리 ‘work of art’는 예술적인 창작행위인 ‘예술작업’이나 그 행위의 결과인 ‘예술작품’을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의미가 labor에 비하여 폭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art와 work가 연결된 work of art에는 labor라는, 즉 노동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19세기 후기인상주의화가이자 20세기 현대회화의 아버지라고 간주되는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의 경우만 보더라도 우리는 예술에 있어서 노동의 개념이 얼마나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는 자신이 쓴 세잔에 대한 권위 있는 논문인 <세잔의 회의(Cézanne's Doubt)>에서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는 하나의 정물을 위해 100번의 작업시간을 가졌고, 하나의 초상화를 위해 150번을 앉았다. 우리가 그의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시도요 회화에 대한 접근이었다.” 

이것은, 얼핏 보기에 세잔의 집요함을 나타내는 말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가 단지 그림 하나를 끝내기 위해서 이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세잔에게 있어서 work of art란 정물이나 인물 안에 있는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으며 그는 회화를 통하여 이러한 것을 끊임없이 찾으려고 하는 한 명의 탐구자였던 것이다.

폴 세잔.

세잔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가치 있는 예술작품은, 마치 한 명의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기나긴 시간과 출산의 고통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고통과 고뇌의 시간을 견디어 내는 시간을 통해서 만들어져 왔던 것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노동이라는 개념이 예술의 개념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고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여기서 우리는 피겨스케이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김연아의 좌우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좌우명은 그녀가 어렸을 적 연습했던 경기장에도 새겨져 있다. 거기에는 바로 이렇게 적혀 있다.

“No pain, no gain”.


** 윗 글은 <광주 아트가이드> 104호(2018년 6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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