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5월 18일이 왔다. 내가 기억하는 5.18은 강고하고 잔인한 풍경이다. 무자비한 진압과 고문에 시달리는 사람들, 총을 매고 싸우는 해방광주,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죽어간 사람들.

5월 18일에 대해 글을 쓴다면 내 주변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386세대와 다른 416세대, 세월호를 겪고 자란 우리들에게 5.18은 어떤 의미인지 적고 싶었다.  

나의 지인인 정형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는 아저씨 같은 풍채를 지니고 냉철하고 온화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다. 그의 반골정신은 유명하다.  
 

18일 38주년 5.18광주민중항쟁 기념식을 맞아 옛 5.18묘지(현 민족민주열사묘지)를 찾은 노동자들. ⓒ광주인


그는 특별한 날에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5월 18일에 그는 1년치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줄담배를 피웠다. 왜 하필이면 5월 18일날이냐고 물어봤었다. 

그는 "저항한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자신은 그렇게 목숨을 불사르면서까지 저항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든다"고 했다. 평소에 부드러운 정형이지만 민주화에 상징적인 날들에는 항상 심각한 얼굴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는 정형이 한편으로는 부러웠고 좋았다. 지금이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문재인 대통령도 부르고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있지만 그때 정형이 담배피우면서 불렀던 그 곡이 '임을 위한 행진곡'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인물로 아는 동생인 전이 생각난다. 전은 날카로운 눈매에 각진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행동하나에는 사려깊음이 묻어났다. 그녀는 5월 18일이 되면 우중충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많은 이들에게 5.18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고, 그게 너무 아쉽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녀가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을 반대했다. 386세대이면서 5.18의 부채감을 안고 있는 부모님이 학생운동을 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전에겐 큰 스트레스였다. 

사회정의에 관해 생각하며 싸우던 사람들이 자식들에게는 '사회 걱정 하지말고 네 걱정이나 해' 라고 하는 것들. 아직도 우리 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 중에 하나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라는 책을 나에게 추천한 것도 전이었다. 

전은 5.18에서 활약했던 여성들에 관해서, 여성이라서 더욱 모질고 수치스러운 고문을 견뎌야 했던 생존자들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다. 전에게 소설 '소년이온다'는 작은 일부분을 보여준 단초였다.

그리고 나. 나는 5월 18일을 아빠와 아빠 주변사람들의 고통으로 인식해왔다. 어렸을 적부터 아빠 배에 있던 수술 자국은 군홧발에 숨골이 깨져서 꿰맨 것이라고 했다. 

우리 집에 자주오는 아빠 친구분들 중에는 손가락이 잘리신 분도 계신다. 아주 어려서 518이 뭔지 모르는 나였지만 5.18은 내게 아빠와 아빠친구들의 몸을 파괴한 폭력으로 기억한다. 

그들의 상흔은 여전하다. 부모님은 TV에서 간혹 나오는 고문 장면이나 운동과 관련된 장면이 나오면 괴로워 하셨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5.18이 상처로만 남지 않았으면 했다. '민주화'라는 모호한 말로 518의 가치가 수렴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해마다 열리는 5.18사적지 순례에 참여하며 5.18에 대해 우리 세대가 가져야 할 마음은 무엇일까 고민하곤 한다. 

이건 내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직도 전국 대부분의 학생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할 것이며 5.18을 단지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국가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도 한국사 시험에 답을 적기 위해서 교과서적으로 암기하는 정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세대들에게는 역사를 공부할 시간조차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주어지는 지금의 역사교육만으로는 5.18에 의미에 대해서,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서 알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들은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내 친구들에게, 나의 또래들에게 518에 대해서 알릴 수 있을까. 왜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것일까. 그 의미는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며. 역사를 고민하는 청년들이 더 늘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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